냉장고 안의 삶



워프의 성공. 글과 그림을 위한 49제




2070년은 처음으로 워프라는 것이 밝혀지고 난 때였다. 쓸데없는 이상주의자들이 대가리를 차지하고 있을 때였고, 그들은 서로에게 경쟁심을 느끼며 우주선을 쏴올렸다. 2100년에 발사된 그 우주선에 탄 건 다름아닌 나였다. 물론 상대방에겐 개라고 속였지만, 사실은 정확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이었던 나였다.
나는 허탈한 기분으로 내가 조종하지도 않는 조종실에 앉아서 헛웃음을 지었다. 어쨌거나 우주선은 명왕성에 딸려있는 위성을 조사한다는 명목으로 기운차게 날아갔다. 아니, 워프했다. 실제로 수많은 오차 끝에 쥐는 워프를 했다. 정확히, 아무런 변화 없이. 그러나 정말로 우주에서, 우주선과 그안의 모든 것이 워프를 할 수 있는 것인가? 질량이 어마어마한 우주선은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나는? 두려움 속에서 점차로 가까워지고 있는 달을 노려보았다. 아아, 어느새 카운트 다운. 5, 4, 3, 2, 1. 그리고 펑!

똑바로 바라볼 정신도 없었고, 차마 눈을 뜨고 있을 수 있는 환경도 아니었기에 나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아무 이상이 없는 것을 느끼고 눈을 떴다. 과학자들이 워프할 때 나타난다고 하는 거대한 빛덩어리가 느껴지지 않았다. 단지 미세한 충격이 카운트 다운이 끝났던 시점에 일어났을 뿐이다.
화면 앞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놀라지 않겠다는 생각을 수없이 했었지만 나는 그 순간 앞에 비쳐지는 광경에 놀라고 말았다. 원래 명왕성이 비쳐야 할 화면은, 아까와 똑같았다! 조금도 다를 바 없이, 그리고 아까의 속도 그대로 달려가면서 가까워지는 모습 그대로! 미세한 진동만이 워프의 잔재로 남아 흔들렸던 것이다.
실패였구나.
씁쓸한 웃음이 지어졌다. 나는 조심스럽게 지구의 관제탑에 연락을 했다.

[어이, 워프는 실패한 것 같군 그래]

한동안 대답이 없었다. 적어도 8초는 지나야 대답이 올 것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기에 처음엔 느긋하게 기다렸다. 한참이 지나도 답은 오지 않았다.

[날 그대로 달에 박아버릴 셈이야?]

초조한 마음에 재게 재촉하자 그제서야 답이 왔다.

[30566782호?]

[그래]

또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안심할 수 있었던 것은, 우주선이 달의 궤도에 들어가고 나서였다. 지구를 따라 24시간 뱅글빙글 도는 달과 함께 돌았다. 적어도 달에 부딪쳐 죽는 것은 아닌 게 확실했다. 한시간쯤 지나고 나서야 그 쪽에서 다시 답이 왔기에 나는 큰 숨을 한 번 내뱉고 메세지를 클릭했다.

[귀환을 축하한다]

잠깐 눈을 뜨고 감는 사이에 수많은 생각들이 오갔다. 도대체 그들이 말하는 '귀환'은 무엇인가? 나는 명왕성 궤도를 따라 운행하는 소혹성이라든지 위성을 알아보기 위해서, 혹은 워프의 실존을 증명하기 위해서 쏘아올린 우주선에 탑승하고 있는 사람일 뿐이었다. '귀환'을 하기 위해서는 무사히 그 임무를 마치고 지구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무슨 소리야? 워프 실패로 지구로 돌아간다는 뜻인가?]

[워프는… 성공했다]

[어디가 성공했다는 거야? 여긴 달 앞이라고]

심드렁하게 실수를 짚어주자 그 쪽에서는 떨리는 답신을 보내왔다.

[지금은 서기 2115년…. 귀환을 축하한다]






덧글

  • key_ 2006/03/11 00:42 # 답글

    호오...
    ...워프가.. 공간이 아닌.. 시간을..
  • 달바람 2006/03/11 14:15 # 답글

    어디로 워프하려고 정해놓은게 없어서 벌어진 일이로군요;;
  • 파김치 2006/03/11 19:01 # 답글

    덧글 감사합니다^^
  • 개발부장 2007/04/11 17:56 # 답글

    우와아아...
    1년 넘은 글이지만 비슷한 글 찾기로 돌아다니다가 날아왔습니다. 멋진 작품이군요.
    허락 없이 댁을 좀 뒤져볼께요~^^ (퀘스트중인 용자 버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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