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안의 삶



[슬램] 반하는 속도는 3초, 깨닫는 속도는 02 파김치 씀


와룡반점 외에 다른 곳으로 옮겨가지 말아주세요.
















미쯔이 히사시▷와
아카기 타케노리◀의 이야기입니다.
여성향 주의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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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범위도 모르는 채 유급을 걱정하는 한 학생이 있습니다. 이제 와서 시험 공부를 한다고 해도 까마득한 이 학생이, 시험 범위도 모른답니다.
보통 여기서부터 까마득하겠지만… 아카기는 어차피 그럴 거라고 생각했기에 미리 준비해 놓은 수식과 문제가 정리 되어 있는 프린트를 내밀었다.
미쯔이는 프린트를 한 번 내려 보았다가 아카기를 다시 올려다보았다. 얼굴엔 이걸로 어쩌라고, 하고 쓰여 있다. 낮은 목소리로 풀라고 윽박지르자 미쯔이는 순순히 프린트에 코를 묻고 푸는가 싶더니, 곧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아, 배고파」
「……」
「배고파서 문제가 하나도 눈에 안 들어오잖아」
「…이 페이지만 풀고 나면 뭐라도 먹을 테니까 입 다물고 문제 풀어」

그러자 바로 눈이 반짝반짝해진다.
그 때까지 낙서와 의미 없는 숫자 계산을 빼고는 깨끗하게 비어있는 프린트를 보며 아카기는 농구의 신에게 잠깐 이 녀석의 농구 센스 대신 수학 관련 뇌세포를 조금이라도 넣어달라고 빌었다.


…그런데 몇 달 전에도 비슷한 걸 빌지 않았었나.
미쯔이를 힐끔 보자 그 쪽은 먹을 것에 홀랑 넘어가, 책상 위에 얹은 왼쪽 팔꿈치에 머리를 기대고 진지한 얼굴로 대수 문제를 내려다보고 있다. 시원스럽게 뻗은 눈썹 사이를 모으고 입술까지 찡그린 채 열심이다. 원래 입술 색이 옅은 미쯔이지만, 모으고 있으니 약간 핏기가 모이는 건지 점차 붉어진다. 꽃잎 색으로 비교를 하면, 벚꽃 잎에서 모란 꽃잎으로 물들여 지는 것 같다. 안쪽으로 깊게 빠질수록 더 붉어지는 꽃잎들처럼, 미쯔이의 입술도 그 중앙이 가장 농염하게 붉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거냐, 나?’

아카기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미쯔이는 고개도 들지 않고 눈만 위로 굴려 그런 아카기를 바라보았다.

「왜? 어디 가?」
「지금 빵 사올 테니까 풀고 있어라」

미쯔이는 생긴 것은 깜짝 놀랄 정도로 잘생긴 주제에, 가끔 무방비하게 노출되는 아이 같은 표정을 짓는다. 항상 약간 화난 표정으로 하고 있어서 그런지 그 웃는 얼굴을 무심코 보게 되면 숨이 멎을 정도로 놀란다.

「진짜? 고릴라 네가 쏘는 거지? 땡큐! 배고프니까 많이 사와라」
「사주겠다는 소린 안했어」
「전前 주장을 대신해서 더럽게 열심히 몸을 움직이고 있잖아. 빵이라도 괜찮으니 바쳐라!」

그리고 반문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안하는 태도로 프린트 쪽으로 몸을 돌렸다.
아카기는 콧방귀를 뀌면서도, 또다시 열심인 태도로 프린트를 보는 미쯔이에게 한 번 웃어주고 교실 문을 나섰다.



「뭐야! 난 야채 들어간 고로케 안 먹어!」

여덟 개나 되는 빵 봉지를 다 휘저어 놓으며 미쯔이가 투덜거렸다.

「고기는 없어? 야끼소바? 에이, 이거 더럽게 맛없어. 너 편의점에서 물건 고르는 것도 몰라? 이 미쯔이 히사시, 그냥 빵이면 다 좋아하는 남자가 아니라구?」

한 번 투덜거리는 것도 아니라 빵마다 이건 이게 싫고, 저건 저게 싫고… 종알종알 실컷 떠들어대더니 입꼬리를 한 쪽만 올리고 비웃듯이 말한다.

「이런 걸 먹고 기쁘게 힘을 쓸 수 있겠어?」

그런 걸 고르는 데 힘을 쏟지 말고 공부에나 힘을 쏟아라.
아카기는 굳이 이마 위로 돌출된 힘줄을 숨기지 않으며 빵을 확 쓸어 비닐봉지에 다시 담았다.

「에엣? 왜 다 담아버리는 거야?」
「먹기 싫으면 먹지 마!」
「그래도 배고프다고!」

아카기 손에서 홱 비닐봉지를 빼앗은 미쯔이는 먹을 게 없다는 둥 투덜대면서도 두 개를 골라 꺼냈다.

「하아… 그나마 이건 먹을 만 하겠군. 음료수는… 엑, 또 포카리?」

아카기는 순간, 정말로 인내의 끈이라는 게 존재하는구나,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방금 그것이 뚝 끊어져 버렸기에.

「이 녀석! 투덜거릴 거라면 먹지 맛!」
「우와, 고릴라 얼굴. 너 금방 발끈하는 건 1학년 때부터 하나도 안 변했네」

너 때문이잖아…!
어이가 없어 말도 안 나오는 아카기였다. 후배를 다루는 것처럼 버럭 소리를 지르지 않는 것만으로도 아카기는 정말 필사적으로 참고 있는 중이었다. 그렇다 해도 초고교급으로 평가받는 박력 있는 표정과 기세건만, 그 앞에서도 미쯔이는 태연하게 비닐봉지를 뒤적거리고 있었다.

「뭐, 네가 기껏 사온 거니까 먹긴 해야지」

건방진 녀석! 너야말로 1학년 때부터 하나도 안 변했어!
자신이 초인적인 인내력으로 포카리 캔을 빼앗지 않는 것만으로도 성장했다는 기분이 든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가 문득 정신을 차려보면, 1학년 때와 마찬가지로 미쯔이와는 서로 투닥거리고 있는 것이다.

‘미쯔이와 있으면 1학년에서 전혀 변하지 않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미쯔이와 단 둘만 있으면 금방 울컥하고, 금방 저 마이 페이스에 끌려 다닌다. 나이를 먹으면서 그런 성급한 성격은 많이 고쳐졌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코구레와 같이 있으면, 계속 같이 시간을 보낸 탓인지 이렇게 급작스럽게 1학년 때와 같은 기분이 들지 않는다.

「컵라면은 안 샀어?」

미쯔이가 비닐봉지에서 시선을 떼고 아카기를 바라보았다.

「응? 안 샀냐?」
「…그런 쓸데없는 나트륨 덩어리를 왜 찾는 거야」

아주 질색인 얼굴이라 미쯔이는 헤에, 하는 얼굴로 아카기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마지막 말을 질문이라고 생각한 건지, 고개를 갸웃하고 잠깐 생각하다가 손바닥을 탁 쳤다.

「맛있으니까?」
「너! 설마 콜라 같은 탄산 마시는 건 아니겠지?」
「안 먹어. 일단 탄산은 맛, 없잖아」

그 부분이 맛의 문제밖에 안 되냐.
문득 아카기는 합숙을 갔을 때나, 같이 식사를 했을 때를 떠올렸다. 그 때 미쯔이가… 제대로 먹었나? 곰곰이 되짚어 보려고 해도 하나미치가 워낙 잘 먹어 대서 정신이 없었던 탓에 다른 사람들이 식사를 제대로 했는지 또렷하게 기억나지 않았다. 후배들에게는 음식을 균형있게 먹으라고 항상 말하지만, 미쯔이는 묘하게 교육을 잘 받고 자란 것 같은 녀석이라 전혀 신경 쓰지 않았었다.

「아무리 간식이라지만 지금 엉망이다! 기름기 많은 고로케만 골라놨잖아! 너, 식사 관리는 제대로 하고 있는 거냐?」
「아아, 잘 하고 있으니까 잔소리 그만해. 네가 밥 먹여주는 것도 아니면서 왜 그렇게 잔소리가 많아?」

미쯔이가 귀찮다는 듯 고로케를 입에 물고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 순간 아카기의 인내심 게이지에 붉은 등이 켜졌다. 초인적으로 누르고 있었던 울컥증이 도지려고 하는 것이다. 이마에 힘줄이 뽀직 드러났지만 아카기는 참았다.
아카기 스스로에게도 항상 하던 말이니, 여기서는 한 발자국 물러설 수밖에.

「그래…. 네 식사 같은 걸 내가 챙겨야 할 건 없지」

미쯔이는 남은 고로케를 한 입에 털어 넣고 우물거리면서 씩 웃었다.

「거봐, 책임 질 수 없는 말은 하는 게 아니라고, 아카기」

아카기는 생각했다.
어째서 미쯔이는 항상 원투 펀치를 날리는 걸까.
그리고 왜 나는 두 번째 펀치에 이성이 끊어지는 걸까.


「책임질 수 없다고? 흥, 난 그런 ‘적당히’ 같은 건 인정 못한다! 내일부터 네 식사 관리는 내가 하겠다!」

아카기의 우렁찬 선전포고에, 미쯔이는… 콧방귀를 뀌었다.

「그럼 나야 좋지」

‘이긴 기분이 들지 않아…! 아니, 심지어 엄청 손해인 것 같은데….’

그 때서야 어딘가 이상해진 것을 뒤늦게 알아차린 아카기 타케노리, 18세의 여름이었다….


덧글

  • 제갈량민 2009/04/23 00:10 # 답글

    아악 ㅋㅋㅋㅋㅋ 나, 미친듯이 자지러집니다 ㅋㅋㅋㅋㅋ
    아우 완전 사랑해♡ 이거 몇 부작 가는 거야? //ㅂ// 꺄울 ㅋㅋㅋㅋㅋ
    진짜 둘이 투닥거리는 거 1학년 때랑 똑같아서 완전 귀엽다아!

    이, 이녀석도 와룡반점 본점으로 뫼셔가겠습니다 ;ㅂ;
    나 햄볶아두 돼?ㅋㅋㅋㅋㅋ
  • 파김치 2009/04/23 01:22 #

    양민, 귀엽게 봐주다니 고맙다?ㅠ_ㅠ 쓰면서 막 헐퀴 이러고 있었는데 되는구냐. 괜찮구나;ㅁ;
    햄볶고 촥헐릿 뽑아줘. (낄낄낄낄낄)
  • 제갈량민 2009/04/23 11:04 #

    뽑아드렸습니다. (덜덜덜덜덜)
  • 파김치 2009/04/23 13:54 #

    양민, 필요없어! 하고 쿨싴하게 말하고 싶지만 현실은 아싸 하악하악
  • 제갈량민 2009/04/23 16:18 #

    우, 우리 인연은 왠지 진짜 오래 갈 것 같은 기분이다...(...)
    취향이 다른데 같아! 같은데 달라! <;;

    주말 동안 열심히 망상해서 다음 주에 종합하자! (뭐래)
  • 파김치 2009/04/24 13:27 #

    양민, 그러니까 대전제는 같은데 소전제에서 다른 거라니까. 낄낄.
    주말동안 열심히 생각................하지 말고 토익을 봐라!
  • 희정 2009/04/23 11:30 # 답글

    나중에 집에가서 봐야겠네요. 흑흑
  • 파김치 2009/04/23 13:54 #

    희정님, 그다지 위험(!)한 것도 없습니다(!).
    아니, 그냥 집에서 보아주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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