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안의 삶



둘이 손잡고, 월정사 보았습니다

푹 자고, 호텔에서 제공하는 조식 먹고, 꼭 강릉에 오면 먹어봐야 한다는 초당 순두부를 먹고(하지만 정말로 적당히 아무 집이나 찾아 들어갔더니 맛없었다능ㅠ_ㅠ), 허난설헌 생가를 찾아가려다가 길 잃고 1분쯤 헤맨 후에 바로 포기하고 월정사로 출발했다.

강릉 시내를 약간 벗어나서 달리고 있는 와중에 4차선 도로인데도 불구하고 아주 태연하게 끼어드는 경운기 발견. 게다가 지나치는 와중에 경운기 조심이라는 표지판까지 붙어 있다. 으하하하하;ㅁ;b 경운기 조심이라니, 원더풀, 강릉!;ㅂ;b
물론 길을 달리는(?) 경운기를 못 보고 자란 것은 아니고, 경운기며 트랙터가 아주 당연하게 다니는 길을 오가며 자랐지만 적어도 그건 1차선이나 2차선이었거든.
4차선이라는 게 아예 존재하지 않는 깡시골과 적어도 4차선 도로는 존재하는 중소 도시의 차이인가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데, 옆에서는 무슨 80년대에나 다녔을 법한 버스가 지나간다.
이 동네는 대체 어떻게 된 동네야?
삐까뻔쩍한 건물이 늘어서 있는가 하면, 그 거리는 오로지 한 블럭 뿐이고, 최신형 그렌져가 달리고 있는 바로 옆에는 저런 버스가 달리고 있다니-_-;



하지만 빨간 신호등에 걸려 서 있는 사이, 버스는 아무렇지도 않게 신호등을 무시하고 혼자 유유히 도로 저편으로 사라졌고, 거기까지 보고 나자 겉이야 어떻든 여기도 대한민국이구나 하고 깨달았다.





월정사를 들어가는 길은 고속도로에서 km로 따지면 그다지 멀지 않다. 하지만 어쩐지 걸리는 시간이 km에 비해 굉장히 길게 찍혀서 왜 그럴까 했더니 온통 커브가 이어진 길이라 속도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가면서 애인님은 그럼 돌아갈 때는 나에게 운전을 한 번 해보라고 권유했다.
후진은 완전 젬병이고, 브레이크 반응 속도는 늦고, 중앙선은 제대로 지키는 적이 없고, 이대로 번아웃 하는 거 아냐 싶을 때도 많기도 하지만 특히 커브를 못하니까 그 연습 겸 해서 말이다. 뭐 써놓고 보니 잘하는 게 없는 것 같은데, 당연하다. 장롱 면허 경험이 면허를 딴 그 시점부터 시작된 걸-_-;
그 뒤에 있을 악몽은 제쳐두고, 월정사에 도착해서 꼭 걸어보라던 전나무 길을 먼저 갔다. 완전히 정오쯤에 도착해서 햇빛이 너무, 굉장히, 엄청나게 좋았기 때문에 건물만 덩그러니 있는 절에 들어가면 더위로 엄청 지칠 것 같았기 때문에.;

설정샷이라고, 손도 구멍에 넣어보라고 하니까 고개만 도리도리하고 뜨악한 얼굴이기에 일단 찍고 나서 왜냐고 물었더니, 우웅하는 목소리로 안에 뱀이 있다구! 하고 버럭.
아니, 몸에 좋고 맛도 좋은(…) 뱀이?!?!?!?
그리고 그걸 봤으면서도 사진 찍는다고 거기 있었던 거?!?!

들여다 봤다가 실제로 뱀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기절이라도 할 것 같아서 후다닥 도망갔다.;

난 미리 살펴보고 뱀 없는 곳으로-_-;
둥치는 몸통이 숭 비어 있어 껍데기만 남아있는데, 그 안에 꼭 다섯 명은 들어가겠더라. 주변의 나무들도 굉장히 오랫동안 잘 자랐지만 이만큼 자란 건 없을 정도로!


느긋느긋 산책하고 월정사로 돌아가는 길에, 주차장 쪽이 엄청나게 시끄러워졌기에 어쩐지 불안해져서 걸음을 재촉해서 절로 올라갔다.
씻겨드리고 있는 중.


앞의 무서운 표정에 맞춰서 설정샷! 을 외쳤지만 아까 뱀에 데인 애인님은 완전 뚱해서 촬영에 응해주지 않았다. 그러게 누가 도망가지 말랬나_-_;


나가는 길에 교복을 입은 학생 무리와 딱 마주쳤다. 동시에 조용하던 곳이 완전 시끌시끌해져서, 서둘러 본 게 다행이다 싶었다. 내가 학생 때 겪은 것만으로도 충분했다구.

서두르느라 못 찍은 사진이 있는데, 동굴 속에 한 사람이 앉아있고, 칼을 찬 한 사람이 그 앞에 눈밭에서 꿇어앉아 있는 그림이었다. 문에 그 외에도 여러가지 그림이 그려져 있었는데, 불교 쪽으로는 아는 이야기가 그다지 없어서 휙휙 보고 지나쳐 갔다가 나중에서야 생각났다. 혹시 그건 아닐까, 하고.
다시 말하지만 불교 쪽으로는 아는 이야기가 없는데… 무협지에서 봤던 내용이라-_-;;

소림 권법을 창시했다는 달마(達磨)에게는 여러 일화가 있다. 그 중 하나가 그 유명한 구 년간의 면벽좌선(面壁坐禪)이다.
그가 소림사에서 면벽좌선을 하던 어느 겨울날, 한 젊은이가 달마를 찾아왔다. 그리고 눈 내리는 뜰에 서서 사흘간이나 달마를 기다렸다. 달마가 그에게 무엇을 구하느냐고 묻자 그는 마음의 평화를 구한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달마는 그를 외면하며 '붉은 눈이 내리면 너를 제자로 받아들이겠다' 고 말한다. 그러자 그 젊은이는 서슴없이 자신의 왼팔을 잘랐고 순간 뜰의 눈은 온통 붉은빛으로 변했다. 이에 달마가 그를 제자로 받아들였으니 그가 바로 혜가(慧可)이다.
- 학사검전 6권 188p


슬쩍 지나가면서 본 거라 물론 아닐 수도 있고, 그림이 맞다손 치더라도 저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다.
그래도 뭔가 비슷해! 어쩐지 역시 아는 게 많아야 여행은 즐겁구나(2)




그리고 지옥의 커브가 남아있었다…
아무리 연습해도 이 흉기는 익숙해질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는다… ㅠ_ㅠ

덧글

  • 물꿈 2009/05/12 21:50 # 답글

    ... 정말로 뱀이요?;; 그걸 알면서도 저 분은!! ;ㅁ;
    그러고보니 정말 이제 뱀이 잠에서 깨어나는 시기였군요.

    ... 글 첫 머리에서 초당 순두부를 읽고 허당 이승기를 떠올린 전 뭔가요.. ㅠㅠ
  • 파김치 2009/05/13 11:44 #

    물꿈님,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농담이라고 하기엔 얼굴이 너무 안 좋아져서.; 제가 아무리 사진 찍으라고 그랬다곤 하지만 뱀을 봤으면 도망쳐 와야지 말이죠.;;
    초당도 허당도 '당' 돌림이네요. 낄낄.
  • 희정 2009/05/13 12:02 # 답글

    그..그렇군요.. 역시 뭔가 알아야..;
  • 파김치 2009/05/14 03:44 #

    희정님, 그러고보면 고등학생 때 매일 지나치던 화성을 국사 선생님과 가니까 뭔가 오오 새로운 지식의 보고! 이러면서 놀랐던 기억이 나요. 역시 뭔가 알아야(2)ㅠㅠ
  • 라히오 2009/05/14 00:28 # 답글

    뱀이 있는데도 그냥 거기서 사진 찍으시다니;; (부르르)
    나무 무지 좋네요 ㅠㅠ 전 거목을 엄청 좋아해서, 보고 있으면 황홀해집니다;
    으흑흑. 만져보고 싶어라...
    즐거운 여행 되셨나요!
  • 파김치 2009/05/14 03:45 #

    라히오님, 저였으면 십리 밖으로 도망갔을 텐데, 용감도 했습니다.
    나무가 정말 다 크고 멋지게 자라서 느긋하게 걸으면서 보기가 정말 좋더라구요. 즐거운 여행이었습니다~>ㅅ<
  • 분홍북극곰 2009/05/15 10:25 # 답글

    뱀 -ㅁ-!!!!!!!

    (어쩌면 저걸 먹어-말어- 고민중이셨을지도,,,음-_-?)
  • 파김치 2009/05/15 19:40 #

    분홍북극곰님, 표정은 완전 썩었었답니다. 으하하.
    돌아올 때 표정 왜 그러냐고, 웃으라고 했더니 그때서야 뱀 이야기를 해준 거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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