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안의 삶



[슬램] 반하는 속도는 3초, 깨닫는 속도는 07 完 파김치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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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쯔이 히사시▷와
아카기 타케노리◀의 이야기입니다.
여성향 주의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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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됩니다)/



아카기의 질문을 정리하면 이렇다;
왜 뛰쳐나와서 날 잡았지? 왜 변명을 해? 네게 내가 뭔데?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나도 지금 왜 뛰쳐나온 건지 모르겠다!」

무시무시한 얼굴로 돌아보는 아카기에게, 오히려 미쯔이는 적반하장 격으로 버럭 화를 냈다.

「애초에 수업 시간이 남았는데 여긴 왜 왔어!」

아카기 팔을 잡고 있던 손을 풀어 척 허리에 얹고 똑바로 노려보며 따박따박 훈계를 하는 것이, 까딱 누가 보면 미쯔이가 주장이고 아카기가 상습 땡땡이 범인 줄 알겠다.
유독 아카기에게 질투심 폭발인 평소와 한 치도 다를 바 없는 모습이라, ‘왜 미쯔이가 키스하는 걸 보고 이러고 있을까’하는 폭풍 충격에 머리를 감싸고 있던 아카기 역시 무심코 평소대로 대꾸할 수 있었다.

「그야 무릎에… 아, 무릎!」

자신이 미쯔이를 찾아 헤맨 까닭을 생각해낸 아카기는 바로 그 자리에서 한쪽 무릎을 꿇었다.

「야, 너, 뭐하는 거야!」

당황한 미쯔이가 소리치며 두어 걸음 물러섰지만, 아카기는 아랑곳하지 않고 미쯔이의 무릎을 덥썩 잡았다.
그것도, 왼쪽.
그곳에 손이 닿자 미쯔이는 정말로 파득 놀라서 엉덩이를 뒤로 뺐다. 그러나 이미 왼쪽 무릎이 잡혀버려서, 오른쪽 발만 두 발자국 뒤를 더듬거리며 밟았을 뿐이다. 도망도 가지 못하게 되자 미쯔이는 필사적으로 목소리를 짜내며 아카기의 머리를 밀었다.

「자, 자, 잠깐만 기다렷!」

하지만 도내에서도 인정받는 센터인 아카기는 흔들림조차 없다.(-_-) 성실하게 단련해온 탓인지 무의식중에 취하게 되는 완벽하게 안정된 낮은 자세에, 애초에 무게 차이도 있어서, 미쯔이의 버둥거림은 허무하게 자기 힘을 빼고 있는 정도였다.

―그 뿐이라도 방해는 된다.
땀에 흠뻑 젖어 질척하게 살에 밀착된 풀 커버 타입의 보호대는 가만히 있어도 벗기기가 힘든데, 거기에 완벽한 타이밍으로 미쯔이가 다리를 버둥거리며 도망을 치고 있어서 손톱만큼도 내려가지 않았다.
아카기는 한 손을 보호대에서 떼고, 짧은 쇼트 위로 드러난 허벅지 뒤로 미끄러뜨렸다. 격렬한 운동을 끝마친 허벅지는 뜨겁게 달아올라 물씬 열을 풍겼다. 아카기는 힘을 주어 잡았다. 땀에 젖은 뜨거운 살이 손바닥에 감겨왔다.

「뭐, 뭐, 뭐야!」

「가만히 있어」

명령형으로 짧게 끊어 말하며, 아카기는 문득 정신이 들어 다른 손으로 다시 보호대를 끌어내렸다. 손으로 움직이지 못하게 잡아놓은 탓에 아까처럼 저항하지 못하게 된 미쯔이는 으, 하고 가볍게 신음하고 다리에 힘을 풀었다.
그 사이에 단호하게 보호대를 종아리까지 끌어내린 아카기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어떻게 된거냐?」

흰 무릎 사이로 선명하게 박힌 불긋한 보라색 멍.

미쯔이가 예전에 다친 곳은 눈으로 보이지 않는 근육과 인대의 문제라, 자신은 봐도 모른다. 그러나 아프다, 고 하면 무심코 상처를 눈으로 확인하려 한다.
아카기는 그래서 미쯔이의 무릎을 눈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은 했지만, 그곳에 실제로 눈에 보이는 무언가가 있으리라고는 단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무릎엔, 멍이 불긋하게 들어있다.
한 번 폭탄이 터진 이후로 조심스럽게 다루던 그 무릎에.

아카기는 길게 눈을 감았다 떴지만, 눈앞의 멍은 사라지지 않았다.

「연습, 때문에?」

고개를 들어 미쯔이의 얼굴을 쳐다보며 묻자, 미쯔이는 잠깐 머뭇거리다 입매를 조금 찡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미야기에게 말해두지」

「뭘?」

별다른 감정 없이 의문만 가득 담은 그 시선을, 아카기는 계속 올려보지 못하고 얼굴을 아래로 내렸다.

「네 연습을 없애거나, 최소화하라고」

「엥? 무슨 소리야? 왜 그딴 짓을 해?」

「부상을 다시 입는 것보다 오히려 연습을 하지 않는 편이 낫다」

아카기의 손이 다시 보호대를 잡았다. 다시 제자리로 끌어올려야 하는데, 멍에 쓸릴지도, 하는 생각이 들어서 손이 움직이지 않는다.

「멍드는 건 원래 운동하다보면 흔하게 있는 일이잖아. 그런 일로 일일이 연습을 못하는 게 말이 돼?」

말을 하면 한다. 그런 아카기라서, 미쯔이는 금방 목소리를 높여 반박했다.
그런 반박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아카기는 보호대를 다시 원상태로 돌려놓지 못하고 일어났다. 꿇어앉았던 교복 바지의 무릎엔 수없이 밟혀 딱딱해진 흙바닥의 먼지가 잔뜩 묻었다.

「거기까지 다칠 정도면 다른 곳은 더 심해」

「아―무 곳도 안 다쳤어!」

「…」

허리를 약간 숙이고 손을 뻗어 무릎 위의 바지를 두드린다. 거세게 꽂히는 여름의 햇살에 모든 것이 아득하게 보인다. 멍이, 미쯔이의 왼쪽 무릎에, 하고 아카기는 몇 번이나 다시 생각해보고 몇 번이나 다시 아득해졌다.
그리고 아득해지는 정신 너머로 또 미쯔이와 미토의 키스 장면이 스치고 지나가서 더욱더 정신이 아득해진다.

당장이라도 삼도천을 건널 것 같은 아카기의 정신 상태를 되돌려 놓은 것은 옷이 스치는 소리와 함께 커지는 그림자 때문이었다.

「응?!」

허리를 펴 미쯔이를 바라본 아카기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

「자, 봐!」

붉은 저지를 벗어 손에 들고 미쯔이는 맨몸으로 기세등등하게 웃었다.
벗어 버린 몸에 시선을 두지 못하고 아카기는 툴툴댔다.

「사쿠라기에게 물들었냐」

「…어디 멍 같은 게 있나 보라는 거다!」

사내의 맨몸 같은 걸로 일일이 놀라면 이상하다.
아카기는 미쯔이와 그런 소문이 난 뒤로 자신이 이상해졌다고 생각하며, 조심조심 시선을 미쯔이의 맨가슴으로 옮겼다.
실내 운동이라 비교적 피부를 태우지 않아 흰 피부를 유지하고 있는데다가 큰 근육이 잘 잡히지 않는 체질인 미쯔이의 상체를 언뜻 보고서 바로 농구 선수를 떠올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다시 제대로 보면, 보통의 책상물림이나, 근육광에게는 없는 섬세한 근육이 군살 없이 제대로 탄탄하게 조이고 있다.
열에 상기되어 벚꽃 색으로 물든 매끄러운 배 위로 땀이 보일 듯 말듯 흘러내려 배꼽에 고였다. 땀이라고 하면 생각나는 끈적한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아카기는 간신히 본래의 목적을 상기하고 말했다.

「등은?」

「아, 쪼잔한 자식. 그렇게 못 믿냐. 봐라, 봐!」

눈앞에서 미쯔이는 등을 돌렸다.
역시 등에도 멍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보이는 것은, 벗고 있다는 사실이다. 햇살이 되퇴어 빛나는 유백색의 등도 역시 살짝 상기되어 붉은 기가 희미하게 돌고 있었다. 뒤로 몸을 살짝 젖혀 움푹 고랑이 팬 등뼈엔 청량한 그늘이 고였다.
넋을 잃고 보고 있는 사이 견갑골이 움직이나 싶더니 재빠르게 저지가 그 위로 덮였다.

「없지? 그러니까 연습 어쩌고는 그만 둬」

미쯔이는 휙 몸을 돌려 아카기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급하게 저지를 입고 벗느라고 희미하게 갈색이 도는 검은 머리카락이 엉망으로 흩어져서 눈썹 아래까지 흘러내렸다. 파랗게 핏줄이 비치는 희고 긴 손가락이 가볍게 머리를 쓸어 올리며 그 사이로 가려지며 언뜻 희미한 잔상을 남긴다. 눈을 아프게 찔러오는 선명한 흑백 대비에 신경 쓰지 않으려고 얼른 눈을 아래로 깔았다.
하지만 눈을 내려도 그곳엔 또다시 충격적으로 눈을 찔러오는 색의 대비. 왼쪽 무릎의 푸른 기가 도는 보랏빛 멍은 유독 도드라져서 굳이 왼쪽 무릎이 아니라 어디든 물들여 놓고 있었다고 해도 놀랐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연습이라고 해도 위험해. 다른 곳도 아니고 [거기]야」

아카기도, 자신이 다시 재발하는 것을 무서워하고 있는 걸까?
…왜?

그 생각에 골몰하며 미쯔이는 스스로도 반신반의하는 말을 반사적으로 내뱉었다.

「병원에서는 재발 위험은 없대」

「무리를 하지 않는 선이겠지. 일단 연습은 중지해」

신뢰받는 아카기의 말은 무섭다. 미야기는 물론, 거기에 아야코에 하루코까지 동원되어서 연습을 중지하라고 시끄럽게 떠들 것이다.
미쯔이는 도무지 쉽게 넘어가는 법이 없는 완고한 전(前) 주장의 단호함에 한숨을 쉬며 말했다.

「사실 연습하다가 다친 거, 아냐」

「뭐?!」

「그게, 어제 너 찾느라고 뛰어다니다가 어딘가에 부딪쳐서」

「무슨 소리야, 어제 네가 나를 언제 찾아왔다고…」

이마를 잔뜩 구긴 아카기가 호통을 치려다 무언가 생각난 듯 말꼬리를 흐렸다. 교무실에 자신을 찾아왔다는 것이 기억난 것이다. 그 다음의 말이며, 상담실이 워낙 임팩트가 컸기 때문에 잊고 있었다.
―그 때 왜 허둥지둥 찾아온 거야?
아카기가 속으로 한 말을 듣기라도 한 것처럼, 미쯔이는 무심코 입술을 핥고 말했다.

「코구레가 찾아와서, 너하고 사귀냐고 물어봤을 때, 너 찾는다고 뛰어다니다가 굴러서, 그래! 너 때문이잖아!」

말하다가, 혼자 열을 받고, 혼자 결론을 낸다. 미쯔이는 어딘가 빨라서 느린 편인 아카기는 금방 따라가지 못하겠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었다.
지금도 역시 그 훌륭한 예로, 아카기는 눈을 꿈뻑거리며 걱정하는 표정 반, 화가 나는 표정 반으로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바보냐?」

결국 짓는 것은, 한심하다는 표정이었다.

「그런 걸 가지고 소란 피우고 멍든 거냐」

「그런 거라니! 너 말야, 자고 일어났더니 갑자기 시커먼 놈하고 사귄다느니 어쨌다느니 하는 소리가 들리는데 당사자를 안 찾아가겠냐!」

「너도 당사자다」

「난 당사자라도 전혀 모른다고! 남녀공학인데도 남자와 소문이 나다니 대체 그게 뭐야, 게다가 체육은 별 이상한 소리를 하고」

그건 그렇지, 하고 아카기는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최고로 엉망인 스토리를 굳건하게 믿고 있어서 곤란했다. 심지어 이 옆의 녀석은, 불 앞의 부채나 마찬가지로 차라리 입을 다물고 있는 편이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아, 무슨 말 하려고 했지?」

아카기는 대답했다.

「당사자인데도 전혀 몰랐다고」

「그래, 거기군. 그러니까, 당사자인데도 전혀 몰랐으니 네 녀석이라도 찾아서 물어봐야 할 거 아냐. 혹시 네가…, 그러니까 알고 있을까 하고」

「알고 있었다면 그런 심각한 내용의 소문이 퍼지게 하지 않아」

애초에 소문에 신경 쓰지 않는 아카기에겐, 참새처럼 떠들며 소문을 이야기하는 동급생은 없다. 본인의 이야기가 나오면 미친 듯이 화를 냈던 예전의 미쯔이를 기억하는 동급생도 많았다.
둘 다 그런 것은 생각지도 못하고 당사자들은 도리어 모르는 것이 소문이란 말인가 따위의 생각을 하며 무겁게 입을 다물었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아카기 쪽이었다.

「괜히 걱정했군」

어색하게 옷매무새를 만진 아카기는 같은 말을 다시 한 번 반복했다.

「괜히 걱정했어. 청춘을 즐기고 있었는데 방해만 하고」

미쯔이는 뒤늦게 아카기는 예전부터 느리긴 해도 성실하고 꾸준했다는 것을, 다시 말해 끈질겼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그만 해, 키스한 게 아니라고!」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 질렸다는 얼굴로 냉정하게 끊자, 이번에는 오히려 아카기가 성마르게 그래, 알았다, 하면서 대답한다.

「너― 질투하는 여자애도 아니고, 뭘 그렇게 짜증스럽게 구냐」

「…」

「뭐야, 왜 말이 없어?」

「…질투라고…?」

생각지도 못한 단어가 가슴을 관통하고, 그 기세에 밀려 정돈되지 못한 단어로 비쭉 튀어나온다. 아카기는 스스로 입 밖으로 튀어나온 목소리에 놀라서 얼른 입을 일자로 꽉 다물고 콧방귀를 뀌었다.
여기까지 달려오게 만든 까닭이 모두 사라져 버려서, 아니, 심지어 자신의 탓으로 벌어진 사소한 해프닝이었다는 것이 명확하게 밝혀지고 나니, 남은 것은 미쯔이의 키스밖에 없었다. 사실은 그것조차 이미 명확하게 미쯔이가 해명했다. 각도 상 그렇게 보인 것일 뿐이라고.
남은 것은 그것을 보고 왜 자신이 화가 났는지, 그리고 왜 다쳤을 지도 모른다는 말에 수업조차 빠지고 이곳으로 달려왔는지, 그것뿐이었다.
자신의 마음뿐이다.

「너… 아니다」

무언가 감지한 미쯔이는 말을 꺼내려다가 덩달아 콧방귀를 뀌며 일자로 입을 다물었다. 분명히 말하면 대대손손 자손만대로 후회하게 될 것 같다는 불길한 예상이 머리를 꽉 눌러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애초에 말을 꺼내면 안 된다. 몸으로 그것을 알고 있기에 미쯔이는 조금 긴장하며 무슨 말을 대신 해야 할까 생각했지만, 아카기는 입을 다문 그대로 조금도 흥미가 없다는 듯 고개를 돌렸을 뿐이다.
관심이 없나, 하고 미쯔이는 입을 삐쭉거리며 나름대로 돌려 말했다.

「너 나한테 할 말 없어?」

「수업 빠지면서 연습 하지 마」

「…언제부터 나한테 설교할 자격이 됐냐! 너도 땡땡이면서!」

아카기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순간적으로 미쯔이는 다시 아카기의 빼곡하게 가득 필기되어 있던 교과서를 떠올리고, 수험생인 아카기가 자신 때문에(자신도 같은 고등학교 3학년이라는 것은 생각도 하지 않고) 수업을 빼먹고 여기에 왔다는 것이 미안해져 조금 고개를 숙이고 사과했다.

「어… 미안」

「뭐가」

「너, 나 좋아하냐?」

어라, 말해버렸다….
말할 생각 없었는데….
입이 근질거려서 참을 수 없었다. 무심코 나올 정도로, 성대에 차곡차곡 쌓여 가던 물음이라, 말하고 나니 기분은 묘했지만 한편으로는 시원해졌다.

「……」

미쯔이의 시원함에 상관없이, 아카기는 농구공으로 뒤통수를 되게 얻어맞은 얼굴이었다. 코트 위에서 듬직하게 모든 사람들을 이끌던 그 녀석과 같은 모습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오히려 갓 입학해 뭐든 열심이지만 잘 되지 않아 화를 냈던 1학년 때의 모습.
차라리 웃으면서 너 같은 놈을 왜, 라거나 응, 이라거나 하는, 장난으로 응답하는 아무런 대답이라도 있었으면 이렇게 자의식이 넘치다 못해 폭발하는 질문을 한 자신이 오히려 창피하지는 않았을 텐데.
아, 이런 바보같은 모든 게 다 ―기대해 버릴 정도로 다정한 네 탓이다.

「뭐야, 농담이라고, 웃어」

그 말을 하자 반 박자 늦게 아카기의 얼굴이 조금 풀렸다. 미쯔이는 입꼬리를 올려 웃으며 바보, 하고 덧붙였다.
아카기가 정말로? 하는 물음이 운동화 속의 모래처럼 가슴 안에서 까끌거리며 마찰한다. 짐작할 수 있는 범위의 답들이 와글와글 싸우고 법석거리지만 그 답들 중의 어느 하나도 정확히 선택할 수 없어서 미쯔이는 갈팡질팡했다.

햇살은 눈에 보일 정도로 샛맑고, 손바닥만한 흰 구름은 높푸른 밝은 하늘에서 둥실거리는 이 날씨 더럽게 좋은 날, 남고생 둘은 서로의 존재를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하며, 시커먼 머리를 득득 긁었다.

「싫어하지 않아. 뭐, 그 정도다」

문득 아카기가 눈을 반쯤 내리깔고 말했다.
그 말이, 아까 물었던 물음의 답이라는 걸 뒤늦게 깨닫고 미쯔이는 눈썹을 치켜떴다.
아까까지는 놀라서 어쩔 줄 모르는 얼굴이더니 제법 여유를 부린다. 진짜 안 귀엽네. …라고 할까 원래 귀여운 곳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싫어하지 않는 녀석 안부 따위가 걱정되어서, 땡땡이까지 치셨다? 음음, 바람직해, 바람직해, 아카기 군」

어깨를 으쓱하는 제스처에 가락까지 넣어 비꼬아 말하자 아카기의 커다랗고 넓은 어깨를 감싼 셔츠가 움찔 구겨졌다.
부끄러우면 화를 내는 녀석이니까 곧바로 버럭 소리를 지를 거라고 생각했지만 아카기는 그 이후로 잠자코 있었다. 오히려 그것이 무서웠다.
초조해질 정도로 반응이 없던 아카기의 입이 천천히 움직였다.

「…그럼 이게 좋아하는 거란 말이냐」

「내가 어떻게 알아?」

시큰둥하게 바로 대꾸를 했지만, 아카기는 곧이곧대로 받아들인 것인지 그렇군, 이런 문제는 스스로 해결해야 어쩌고 중얼거리며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바보냐?」

아카기와 똑같이 중얼거린 미쯔이는 확 아카기의 멱살을 잡아채서 자신의 쪽으로 끌어당겼다.

「이 천재가 정리해주지」

이것 봐, 사쿠라기 때문에 천재 열풍이 쇼호쿠 내에서 번졌다. 좋지 않아. 좋지 않아. 정말 좋지 않다.
아카기는 연신 좋지 않다고 중얼거리며 가까이 다가온 미쯔이의 얼굴을 맞대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내가 보고 싶냐?」

글쎄.

「걱정 돼?」

가끔은.

「내가 말하는 건 다 들어주고 싶지?」

그럴 것 같냐.

「여기서 세모만 나와도 날 좋아하는 거야. 알겠냐?」

멱살을 잡은 손을 짤짤 흔들어 고개 돌린 아카기를 마주 보게 해놓고, 몸서리쳐질 정도로 간단하게 정의해주며 미쯔이는 시원스럽게 낄낄댔다. 멱살을 잡힌 상대방은 신경도 쓰지 않는 눈치다.
억지로 마주보게 된 미쯔이의 얼굴이 더 가까이 다가왔다. 습윤하고 뜨거운 숨이 내쉴 때마다 간질간질 닿아올 정도로.
간질간질한 숨이 얼굴뿐만이 아니라 가슴까지도 닿는 것 같다. 이전까지와 비슷하지만 더 강렬하게 마음을 긁어오는 숨결에 아카기는 무심코 약간 미간을 찡그리며 고개를 돌렸다.
아카기의 표정이나 의사를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굴며 웃던 미쯔이지만, 아카기가 다시 고개를 돌려버리자 곧바로 웃음을 멈추고 입술을 비죽거렸다.

―입술이, 만개한 짙은 모란 빛.
아까 미토가 닿았다고 생각했을 때 참을 수 없었던 질투.

누군가에게 닿는 미쯔이는 보기 싫다.
그 누군가가 내가 아닌 것이 싫다.

「뭐야, 왜 고개를 돌려!」

한껏 숨을 들이마시고 투덜거릴 채비를 하는 미쯔이를 코앞에 두고 아카기는 고개를 숙였다. 땀이 스며나온 맑고 서늘한 이마와 콩 부딪쳤다.
닿은 이마를 미끄러뜨리고 턱을 조금 더 앞으로 내밀면, 입술이 닿았다. 아, 하고 미쯔이의 입술이 놀라움에 벌어지려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빠르게 맞닿은 입술을 통해서 느껴진다.
멱살을 움켜쥐고 있던 손에서 천천히, 힘이 풀렸다.
크게 뜨인 짙은 갈색의 속눈썹 아래로 경악으로 벌어진 미쯔이의 눈동자가 떼구르르 굴러 아카기와 마주쳤다.
눈이 마주친 그대로 목에 힘을 주고 도장 찍는 것처럼 꾹 누른다. 힘을 주는 대로 입술이 그 아래 감춰져 있는 딱딱한 이의 감촉을 희미하게 건네며 부드럽게 눌렸다.
천천히 고개를 든 아카기는 얼이 빠져 있는 미쯔이를 똑바로 내려 보며 또다시 늦은 대답을 했다.

「셋 다 동그라미」

항상 신경이 쓰이는 마음에 들지 않는 팀 동료.
졸업하고 나면 영영 눈앞에서 사라질, 그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나빠져서 도리어 이 녀석을 생각하는 것이 기분 나쁜 걸까 생각했던.

「뭐, 그정도다」

반한 것은 3초라는 짧은 시간이지만, 깨달은 것은 3년이라는 기나긴 시간 후에.
지금에서야 아카기는 계속해서 자신을 괴롭히던 불안한 감정의 이름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세모만 나와도 좋아하는 거라며? 그런데 셋 다 동그라미다.

「너, 너…!」

「넌?」

어느새 허공으로 늘어진 미쯔이의 두 팔을 꽉 잡고 아카기는 다시 한 번 물었다.

「넌 어때?」

「모, 모르겠으니까 한 번 더 해봐!」

아카기는 그렇게 했다.













그리고 시원한 농구장 바닥에 누워서 유리창을 통해 바깥 상황을 지켜보던 요헤이는, 씩 웃으며 중얼거렸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겠어?」











아카기 타케노리님(…) 죄송합니다. 마지막엔 너도 제정신이 아니네요.
아무튼 반나절의 덕대화로 어느 순간 이런 것까지 내놓게 되었습니다.
원래 리퀘는 '개인과외' 하나였는데 어째서 이렇게 도시락이며 멍이며 덕지덕지 붙어서 길게 된 건지는, 글쎄요, 덕심에게 물어야죠. 멋진 아카기를 써주지 못해 아쉽고;ㅅ; 멋진 미쯔이를 써주지 못해 아쉽고… 그래도 완결이라는 글자는 기쁩니다.

덧글

  • 제갈량민 2009/07/09 22:18 # 답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뒹굴링! 뒹굴링!)
    태그가, 태그가 너무 절절하시네요, 파김치님ㅋㅋㅋㅋㅋ 그런데 아카기 완전 초 귀엽다 ㅠㅠㅠㅠb 모르겠으니까 한 번 더 해보라는 것도 빵 터지고. 개인과외가 왜 이렇게 덕지덕지 길어지게 된 건지는... 로그에게 물어봐야겠죠? (풉)
    완결을 ㅊㅋㅊㅋ하며 새로운 리퀘를 기대해보며 본점으로 데려가겠슴. 슝슝.
  • 파김치 2009/07/10 17:11 #

    제갈량민, 로그에게 물어봐야겠죠?ㅋㅋㅋㅋㅋ
    귀엽게 봐 주셔서 감사감사. 너무 막나가나 싶어서 아카기한테는 그저 미안할 뿐이고 미쯔이는 뜬금없어서 미안할 뿐이고;ㅅ;
    리퀘 해주신 당신에게도 감사.
  • ... 2009/07/10 09:56 # 삭제 답글

    아.. 짤방이 너무 므흐흐흐흣
  • 파김치 2009/07/10 17:12 #

    ...님, 멋진 한 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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