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안의 삶



이것은 하나의 거대한…… 읽었습니다

마성의 아이마성의 아이 - 8점
오노 후유미 지음, 추지나 옮김/북스피어

고스트 헌터 시리즈에서 스토리 작가인 오노 후유미에 단숨에 반해버린 뒤로, 가장 빠르고 단순하게 접할 수 있는 것은 십이국기와 2009년 재출간된 마성의 아이였다. 의외로 만화도 많았는데, 책도 많았다.
라노베 특유의 긴 시리즈는 아직 작가에 대해 전혀 모르는 만큼 부담이 가고, 그 외의 책은 대체로 품절이었으니 손을 댈 수 있는 건 사실 한정되어 있었다.
그래서 마성의 아이로 오노 후유미를 문장으로는 첫번째로 접하게 되었다.



사실 최근에 묘한 뜻으로 많이 쓰이는 「마성」이라는 단어 때문에(이건 전적으로 요시나가 후미가 <서양골동양과자점>에서 마성의 게이 운운했기 때문이다) 이야기에 대해 다른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예를 들면 이토 준지의 <토미에>.
그러나 읽다보니 마성은 내가 생각하던 마성이 아니라, 한문의 뜻 그대로의 의미였다. 편집자 노트에서도 그에 대한 이야기가 잠깐 나온다. 그치, 90년대엔 괜찮겠지만 지금은… 우리 마성이 달라졌어요!



생각 외로 두꺼웠지만 간결하고 짧은 문장 덕분에 술술 읽히는 편이다. 소품도 섬세하고.
히로세는 교생으로 돌아온 모교에서 가미카쿠시를 당했다는 다카사토를 만난다. 타칭 아이돌 다카사토의 주변에서는 점차 기이한 '사고'들이 나기 시작하고, 히로세는 그런 그를 지키려 한다.
대략 이런 스토리인데, 다 보고 난 후엔 형언할 수 없는 생각이 떠돌았다.




뭐라고 해야 할까……
이건 그거야.





프롤로그야.

혹은 외전이야.





374 페이지짜리!!!!!!!







그리고 본편은 십이국기겠지.
초반엔 아주 느리고 꼼꼼하게 다카사토의 '무언가'와 히로세의 감정에 대해 그리더니 급작스럽게 온갖 설정이 드러난다. 아니, 이러고도 십이국기와 연관지어 생각하지 말아주세요, 라니.
십이국기가 아예 나오지 않았을 때라면 엔딩이 손나 급격하고 불친절하네… 정도가 되겠고(애초에 다카사토가 자기 정체성을 깨달은 것도 끝의 10페이지쯤 전이고), 십이국기가 나온 지금이라면 아놔 님아 그래서 지금 374 페이지짜리 다이키 외전 쓰니까 좋나여? 이 정도가 되겠지.














히로세가 자신과 마찬가지로 이 세계에서 붕 떠 있는 다카사토에게 매료… 라고 할까 심정적으로 동조하게 된 것은 이해가 가지만, 분명히 그는 다카사토는 뭔가 다르다고 알고 있었다.
거의 끝에 가까워질 때까지 확신하진 못하지만 무언가 다카사토에게 붙어 수호하고 있다는 사실을.


누구라도 모든 사람에게 잘해줄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을 거야. 하지만 순서를 정하지 않으면 안 될 때도 있는 법이야. 모두를 좋아한다는 건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다는 소리야.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해.
p199, 마성의 아이, 북스피어, 오노 후유미


이렇게 말하는 고토를 히로세는 더럽다고 한다.

그러나 인간이라서 더러운 것이 아니라, 이해심은 있을지라도 결국 평범한 인간인 고토와 똑같이 생각하고 있는 자신을, 이질적이지 못한 자신을 싫어해서 더럽다고 말한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히로세가 다카사토에게 동전의 이면 운운하며, 수호하는 존재를 '너의 이기심'이라고 말했을 때 확 짜증이 났다.
다카사토는 그런 존재가 아니고, 다카사토로서도 통제할 수 있는 존재도 아닌 것은 히로세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잖아. 어째서 모르는 척하려고 그렇게 애쓰는 거야!
히로세는 오히려 가까이 붙어있던 만큼 다카사토의 이질에 대해서 누구보다 예리하게 꿰뚫는다.
다른 사람이라면 저런 가설을 생각하고 믿어 볼 수 있겠지만 히로세는 다르다.

알고 있으면서도 단지 세상에 붕 떠 있는 자신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지금까지 살며 만난 단 한 명의 동조자를 잃지 않으려 억지로 모르는 체를 하는 것 뿐이다. 다카사토가 너무 멀리 가버리지 않기를 바래서.
때문에 히로세에겐 그 순간부터 정이 뚝 떨어졌음.


고토는 이미 그런 히로세에게 경고한다.

"네 꿈 따위 얼마든지 부정해 주지. 단순히 꿈이었다는 증명도 불가능하지만 너 역시 꿈이 아니라고 증명할 수는 없잖아? 너와 다카사토의 다른 점은 바로 그거야. 다카사토에게 끌려 다니지 마. 동정하는 건 좋지만 동포라는 둥 달콤한 꿈을 꾸지마."
"달콤한… 꿈."
"다카사토의 꿈은 전부 부정할 수 없어. 넌 거기에 매달리려고 하는 것처럼 보여. 자기 꿈을 다카사토에게 덮어 씌워서 저세상이 있다는 증명을 구하려는 것처럼 보여. 히로세, 그건 네게 좋지 않아."
p281, 같은 책


그러나 히로세는 오히려 고토와의 단절을 선택한다.

역시 같은 편이 아니었다. 이 남자도 결국은 이 세상 사람에 불과했다. 고토는 히로세를 이해할 수 없고 히로세도 고토를 이해할 수 없다. 너무 멀다. 세상은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다. 돌아갈 수 있다면 돌아가고 싶다.
p281, 같은 책


히로세가 다카사토에게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하는 것은 '너의 이기심'이라고 강요하는 것도 이 이후였다.
히로세가 인간이라서 저런 감정을 품게 되는 거라면, 히로세가 몇 번이나 중얼거리는 것처럼 인간은 더럽고, 추하다.
하지만 동시에 이러한 것은 인간이라서, 라고 간단하게 정의내리고, 인간은 전부가 이단이라느니 하는 것은 역시 거슬린다. 모두가 이단이라면, 무엇이 '인간'이 더럽다고 말할 수 있는데? 인간이 아니라 단지 히로세가 더러운 것 뿐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선택받지 못했다'고 하는 히로세도 그렇고 작가에게도 좀 짜증….
인간이라는 게 그렇게 싫고, 너의 세계로 가고 싶으면 다시 죽으면 될 거 아냐.




초반의 멀쩡한 사람이던 히로세를 떠올리면, 그랬던 히로세를 이런 신세로 전락하리만큼 자신에게 매료시키다니 어떤 의미에서는 다카사토, 요즘 말로도 마성의 소년이긴 하네…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_-;












어쨌거나 작가를 알기 위해서 읽은 책이라고 생각하면, 제대로 걸렸구나!(?) 싶다.
여전히 십이국기는 읽어볼 생각이 안들지만(…). 십이국기는 무엇보다 길고… 사실 라노베 & 공주 조합은 싫어…. 고스트 헌터를 봐도 그다지 꽃 팔랑 하트 동동 이러지는 않을 것 같지만 본능이 거부합니다.



짧게 말해,
오노 후유미의 간명하고 섬세한 스타일은 굉장히 마음에 들었고,
마성의 아이는 십이국기의 외전처럼 느껴져서 별 깎는다.

http://pakimchi.egloos.com2010-06-30T10:33:390.3810

덧글

  • 쪼히 2010/06/30 23:09 # 답글

    정치에 관심이 있으시면 십이국기는 꼭 읽어보세요 ㅠ 읽으실 마음이 없으시다니 제가 다 아쉽네요. 공주? 랑은 전혀 상관없는데 ㅎㅎㅎㅎㅎ 세계관 자체가 아주 환상적입니다. '治世'대한 나름의 고민이 들어있어요. (얼마전에 다른분의 블로그에서 봤는데 은영전 해설에 오노 후유미가 이상적인 정치 제도에 대해 고민한 내용이 들어있더군요... 거기서 제시한 내용이 다 십이국기 주 내용이라서 좀 소름돋았어요 ㅋㅋ)

    전 정말정말 좋아하거든요. 고스트헌트도 우리나라에 번역되어나와있는건 두권밖에 없어서(그것도 코믹스 이후의 외전격......) 두권밖에 못읽었는데 ㅠㅠㅠ 다 나와줬으면 좋겠어요. 꺄 전 그냥 오노주상 팬인듯 ㅋㅋㅋ

    아직까지 시귀를 안읽은게 문제라면 문제;;
  • 파김치 2010/07/01 12:53 #

    쪼히님, 정치에 관심이 없다면!(두둥)
    아니, 그런 건 아니고 확실히 길어서 좀 부담스러운 면도 있는 듯 해요. 찾아보니 벌써 10권 가까이 나오기도 했구…. 저도 은영전 해설에 오노 후유미가 쓴 그 포스팅 봤었던 듯 해요. 그래서 오노 후유미에 대해 괜찮은가 싶다가도… 넵, 역시 기대 하고 기회가 되면 바로 읽어봐야겠어요!

    문장도 차분해서 단편집들 다 읽어보고 싶은데 벌써 품절 크리네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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