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안의 삶



도돌이표 밤의 흔적


그가 불빛에 홀려 찾아오길 기다린다.
헤매다 첩첩산중, 혹은 계곡, 어쨌거나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아 길조차 없는 이 곳에 으리으리하고 화려한 기생집이 있어 놀라며 찾아오면, 마음껏 그를 좋아하고, 사랑하고, 꿀 속에 빠져버린 벌처럼 달콤한 냄새에 끌려 왔다가 끈적한 꿀에 날개 파닥이는 것조차 하지 못하고 잠기듯이, 사랑한다.

그렇지만 한순간에 모든 것과 단절되어 버리는 건 누구도 원하지 않는다.
서로 아무리 사랑한다고 느꼈어도, 사랑하는 사람은 어느 순간 다시 여행자가 되려고 한다. 나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랑하는 사람을 보기 위해.
필사적으로 잡는다. 사랑하는 사람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살이 에이는 심정으로 말려도 사랑하는 사람은 이미 모든 것에 의심을 품었다. 한 번 마음 속에서 자란 의심은 믿음을 갉아먹고 독초처럼 끈질기게 뿌리를 뻗어 잠식한다.

사랑하는 사람은 어느 날 붙잡는 나를 뿌리치고, 결국 나가버렸다.
그 사람이 한 발자국, 두 발자국 멀어질 때마다 내 세계는, 물론 나까지, 모두 조금씩 부서지며, 놀란 그가 겁에 질려 달려나가는 순간 모든 것이 부서진다. 그 사람이 외면하고, 그 사람의 안에서 잊혀졌을 때, 나는 죽는다.


그 사람도.
내 손에서 떠났을 때 이미 죽어가고 있다. 거꾸로 말하면, 그가 죽어가고 있을 때만 보인다. 나는, 내 세계는.
산산조각난 세계 밖에서 무력하게 그 사람이 죽는 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어떤 때는 강에 휩쓸려 떠내려 가는 마지막에, 어떤 때는 가슴에 칼을 쑤셔박혀 피흘리는 마지막에, 어떤 때는 독을 먹고 의식이 꺼지는 마지막에… 수많은 그의 죽음을 본다.

거봐, 그러니까 가지 말라고 했잖아. 나하고 여기서 영원히 행복하게 살자고 그랬잖아.
울면서 중얼거려도 이미 그는 뛰쳐나갔고, 이미 내 세계는 부서졌고, 이미 그와 나는 죽었다. 그의 꿈에서 기생해 살아가는 나는 그의 꿈이 깨지는 순간에 죽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나는 나의 시체 위에서 또다시 살아난다.
다시 사랑에 빠질 준비가 되어, 죽음의 마지막에 헤매어 뛰어들 누군가를 기다리면서.





꿈에서는 대체로 무성이라고 하긴 뭐한데 아무튼 성별이 모호하고 특별하게 정해지지 않아서(체형 역시 가슴은 밋밋하고 사타구니도 밋밋하고), 대연애를 하든 뭘 하든 깨어나서 생각해보면 참 호모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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