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안의 삶



경성기담… 이기보다 차라리 경성 스캔들! 읽었습니다


경성기담경성기담 - 10점
전봉관 지음/살림


이 책을 읽고 가장 큰 성과라면, 전반적인 인문 관련 책에 대한 자신의 취향을 드디어(!) 깨닫게 된 것.





나 이런 종류의 책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군.






사료를 모아서 재구성한 것도 아니고, 그냥 이랬으니 이러이러 했을 거다, 라는 사견(私見)을 사료처럼 포장해 놓은 것….
완전히 사견을 담았으면 담은 대로 소설 풍으로 쓰든가, 철저하게 사료에 근거해서 분석만을 하려면 하려든가… 이도 저도 아니고 어떤 게 진짜 사료인지 사료를 통해서 재구성한 있을 법한 이야기인지 모르겠단 말이다! 문학적 상상력 따위…!
비슷한 부류로는 저 먼 옛날 읽으려다 결국 에잇 모르겠다 포기하고 던져버린 「대왕 세종」있으시고.

역사절 사실을 가미해 아예 소설로 쓰여져 재미있게 봤던 건 「진리는 시간의 딸」. 그치만 이렇게 다루려면 아무래도 단 한가지의 사건밖에 못 다루니까 「경성기담」이라는 책 취지에는 맞지 않기도 하겠다.

그래도 이렇게 아예 소설로 가지 않을 거라면, 1부는 특히 미스테리 "사건"인 만큼, 수사 과정이나, 재판 때의 상세한 기록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상세한 기록은 오히려 2부인 스캔들에서 더 부각된 듯 하다. 하긴 "온갖 잡지에서 나온 만큼 생략하고"라는 구절이 그 당시 잡지에도 나와있을 정도니 수사 기록보다 더 자세할 수밖에=_=;
그런 이유로, 1부인 미스테리 사건보다는 2부인 스캔들 편이 비교적 편하게 읽을 수 있다.


가끔 나는 나름대로 조선에서 이어져 온― 꼭 굳이 조선에서 이어졌다기 보다는 일제 강점기 때에서라도 이어진, 신분의 구별이 없어졌다고 해도 양반이며 귀족 나리님네들이 있을 텐데, 지금은 왜 다 망해서 흔적도 없을까, 생각했었거든.
스캔들 2, 3부인 순종 임금의 장인이라는 윤택영 후작이 채무왕이라고 불릴 정도로 돈을 빚내다가 흥청망청 놀았다는 거나, 이인용 남작의 돈에 얽힌 부부 싸움 & 거기에 몰려드는 하이에나 같은 친척들 보면 Aㅏ…하고 짐작이 간다. 답이 없다. 이러니까 귀족이 없지.-_-;

그 뒤의 이야기들은 또 나름대로 사랑에 관한 스캔들.
저 때 소설을 보면 진짜 흔히 보이는 그거 있잖아. 부모님이 정해서 결혼시켜준 구식 처를 버리고 신여성과 사랑 만세를 외치는 인텔리. 소설마다 우르르 전처를 차고 사랑 찾아 신여성을 쫓는 설정이 안 나오는 게 없어서 앜!!! 다들 왜 이래!!! 이랬는데 실제로 이 책에서 다루는 유명한 이야기만 해도 두 편이다.
첫번째는 안기영 교수의 제자와의 애정도피 행각. 말그대로 조강지처 버리고 제자와 눈맞아서 도망감. 그런데도 조강지처 쪽에서는 고작해야 할 수 있는 게 안기영이 슬그머니 돌아와서 열린 음악회를 여니 쫓아가서 훼방놓는 일밖에 못하고.
또 그렇게 전처와 이혼시키고 나서 결혼한 인텔리를 신여성 쪽에서 다시 걷어찬 박인덕 이혼 사건도 있음.

나는 여자이니 어디까지든지 남편의 종이 되라는 말입니까?
나는 결혼 이후 10년이 되는 오늘까지 그들을 부양해 왔고, 그들의 어머니요, 아내라기보다는 종노릇을 해왔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어디까지든지 그에게 경제적으로 독립해 달라고 애원했습니다. 아내라는 사람은 뼈가 빠지도록 그들을 먹여살리기 위해 일하는데 남편은 집에서 낮잠만 자야겠습니까? 나는 더 이상 인종할 수 없습니다. 신여성이요, 선각자라는 내가 이에 굴종한다고 하면 이후 다른 여성들도 남편의 종이 되라는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나는 그에게 이혼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별거를 요구한 것입니다. 남편이 별거와 이혼이 무엇이 다르냐고 이혼해 주마 한 것이지요. 또 시집갈 내가 아니요, 남자를 탐하는 내가 아니니 이혼을 해주거나 별거를 하거나 문제가 아닙니다. 이혼을 해줄 터이니 돈을 내라니요. 모든 것이 나의 자유인 이상 내 자유를 돈을 내고 사겠습니까? 어린아이의 양육비로 달라고요? 자기의 자식을 자기가 기르지 아니하고 아내에게 양육비를 달라는 어리석은 말이 어디 있습니까?
자식의 장래를 위해 호의로서 주고자 하는 뜻도 없지는 않으나, 남편에게 돈을 준다 하면 이혼을 돈 주고 샀다는 오해를 받기 쉬운 고로 한 푼도 낼 수 없습니다. 자식이 기르기 어려워 내게 맡긴다면 장성할 때까지 훌륭히 양육하지요. 그가 무엇이라고 하든지 어떠한 짓을 하든지, 나는 사회를 위하여 일하려는 사람입니다.
p305, 박인덕



그 외에도 여러가지 있는데, 따져보면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다.
읽다보면 경성이라는 아주 특수한 시대의 한 부분을 잘랐는데도 불구하고, 왜 이렇게 사람 사는 일이 다 똑같고 변하지도 않았냐ㅠㅠㅠㅠ하고 눙물이 남.
그래서 기담이라고 하긴 슬프고 그냥 스캔들.


http://pakimchi.egloos.com2010-10-19T14:53:250.31010

덧글

  • 2010/10/20 13:18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파김치 2010/10/20 18:41 #

    비공개님, 아, 그렇군요. 미리 그런 쪽이라고 알고 있으면 기대를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으로 돌렸을 텐데, 아쉽게도 정보가 없었어요.orz
    강의로 들어보면 오히려 재미있을 것 같네요. 점수와는 별도겠지만.;;
  • 2010/10/20 20:48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파김치 2010/10/21 11:13 #

    비공개님, 음, 교양이라고 해도 미리 준비는 해가야하니까요. 그래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전공보다 교양 수업을 더 재미있게 들어서.ㅋㅋ
  • 히카리 2010/10/20 22:24 # 답글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라는 영화에서 보면, 전쟁으로 나라가 망하고 난민이 된 고통을 겪은
    사람들이 고민하는 건, 남편이 다른 보트로 타게 되서 그 보트의 여자랑 바람났어요. 어떻게 해요.
    이런 고민이라더라;; 어딜가든 하나되는 사람이야기;; 경성 스캔들이 저런 얘기였구나;
  • 파김치 2010/10/21 11:15 #

    히카리 언니, orz 절박한 상황에서도 본능은 어디 가지 않는구만. …절박한 상황이니까 본능이 튀어나오나? 아무튼 '경성'이라고 하면 되게 이상한 시대잖아? 거기에 기담이라고 해서 으시시한 이야기일 줄 알았는데, 약간 독특한 스캔들 정도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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