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안의 삶



펌프킨 시저스, 이와나가 료타로 읽었습니다



펌프킨 시저스 13 - 10점
이와나가 료타로 지음/학산문화사(만화)


[알리스 L. 말빈]

처음엔 아무 것도 모르고 떽떽거리며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설치는(…) 주인공, 알리스 소위 때문에 짜잉 많이 났어요. 요게 말로만 '국민, 백성을 위한다'고 하지만 결국 귀족. 국민의 실상도 모를 뿐더러, 1권에서 그라우 울프 팀의 한 사람이 말한 대로 '첫 전투 전에 정전을 맞이한' '평화로운 병아리님' 그대로였습니다.
사관 학교를 나와서 바로 전쟁 후의 재해, 즉 전재를 막는 부대에 들어와 지휘관으로 융통성 제로. 눈앞에서 불합리하고 불쌍한 일이 벌어지면 당사자 입장에선 오히려 깽판을 놓는 수준으로 도와(…)주며 악·즉·참이 모토.
눈앞의 불합리한 일을 못 참는다. 옳습니다. 할 수 있는 한 돕는다. 좋아요.
사람은 원래 이렇게 생겨먹어야 합니다. 이런 모토가 모두에게 널리 퍼져야 합니다.

근데 거기에 '불합리한 일'과 '돕는다'는 게 그 당사자를 깊이 이해하지 않고서는 진짜 수박 겉핥기에 불과하며 그 도움이란 건 오히려 깽판 수준으로 전락해버리거든요? 까딱 잘못하면 그냥 고문관.
알리스 소위는 그야말로 고문관의 전형^m^, 짜증날 정도로 완벽하게 전형적인, 입으로만 떽떽 나불나불하다 '실상'을 아는 남주인공에 의해 몇 번이나 구원받는 여주인공 캐릭터였습니다. 그런 주제에 몸을 사리는 남주에게 말 몇 마디 던져서 남주가 우오오 너의 말을 듣고 깨달았어 이 전장 & 문제는 내가 처리하겠어! 라고 생각할 수 있도록 정신마비 버프를 넣어주는데, 솔직히 고딴 말 듣고 일어서는 남주도 남주다….(…)
결론적으로 무지 싫어합니다, 요런 여주인공.
말그대로 남주 돋보이게 하는 역할 & 연애 루트 1 밖에 안되니까!





하지만 권수를 더해갈수록 요 알리스 소위는 그냥 성급할 뿐, 입으로만 성급한 게 아니라 행동으로도 성급하고, 자신의 목숨보다 자신의 신념이 우선인 캐릭터가 되어갑니다. 더해 죽었다 깨나면 혹시 모를까 부러질지언정 휘어지지 않는 자신 나름대로의 줏대 있는 모습으로 그려지기 시작해서, 즉 캐릭터가 꽤 바뀌면서 좋아하게 됐습니다.
아마 작가가 '이상적인 귀족', 귀족다운 귀족을 그리려고 한 듯. 1권의 에피소드와는 진짜 캐릭터가 많이 달라집니다.

하지만 그런 심지에 비해 가끔은… 국민을 위한다면서 한 번도 국민을 본 적도, 관찰할 적도, 가까이 다가가 본 적도 없는 거 아냐? 싶은 모습이 상당히 자주 일어납니다. 초반에 알리스 소위의 아버지가 백성과 귀족의 울타리를 좀더 없애야 한다는 알리스의 말에 "이 빈곤한 시대에 매일 아침 빵을 먹을 수 있는 귀족인 네가 그런 말을 입에 담으니…" 운운했을 때 놀라는 그 모습이라니-_-;;;; 설마 그것조차 몰랐던 거냐;;;;;;;
하긴 어렸을 때부터 귀족의 작위를 잇겠다며 검 연습 삼매경, 조금 큰 뒤에는 귀족이나 들어가는 사관 학교에 들어갔고 하니 귀족 아닌 사람과 만날 기회조차 없었겠죠. 그렇더라도 전재 부흥이라는 부에 들어갔으면 사람들의 실생활이 어떤지 조금은 알아야지, 요놈아.

특히 무도회에서 봉기가 일어났을 때의 알리스는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귀족의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온당치 못한 일에 하늘을 찌를 듯한 자존심과 고고한 긍지를 내세워 결투를 신청하는 모습.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당장 만난 사람에게 있는지 없는지 확신이 들지도 않는 긍지 따위를 아무리 내세우고, 말을 아무리 번드르하게 해도, 결론적으로 나는 버스비가 70원이라고 대답하는 인간에게는 신뢰가 안가거든요. 알지도 못하면서 말로만 떠든다는 인상이 안 지워져. 우리와 유리된 자가 우리를 이해할 수 있는지?

하지만 적어도 '공평'을 내세우는 알리스는 그럭저럭 합격이었어요. 당장 쳐들어온 평민들 뿐만 아니라 귀족들에게도, 즉 '모두'에게 유리되어 있는 알리스는 그렇기 때문에 누구에게든 평민이든 귀족이든, 혹은 황제폐하든- 펌프킨 시저스를 들이댈 수 있고,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였으니까요.
적어도 당장 공격당한 건 평민이었지만, 그 후 얼마 없는 긍지나마 싹싹 긁어모아 결투에 나선 파울로 후작과 결투할 대리인으로 군인이자 '평민'을 내세운 건 여러모로 파격적이고, 극히 좋은 결과를 낸 결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소위의 언니들은 불합격^-^
귀족은 평민을 버러지 취급해도 되고 평민은 귀족 버러지 취급하면 안됨?^^ 그리고 오만한 게 딱 나는 귀족으로서의 각오가 되어있다! 너희들과는 달라! 그런 모습이기 때문에 불합격.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귀족다운, 제 딴에는 깨어있는' 귀족의 모습이라 알리스의 분투에 잠깐 잊혀졌던 불쾌감이 다시 스멀스멀 기어올랐네요. "작당해서 폭력을 휘두르는 당신들과 똑같이 취급하지 말" 라니 아놔 그럼 그런 놈들에게 한 번 당해보시져? 뭣 때문에 작당해서 폭력을 휘두르러 왔는데? 눈앞에서 요런 말을 들었으면 나 같으면 락휴빡쳐! 하면서 곡괭이로 찌르겠고만-_-;;;
요 백성들은 당장 자식새끼도 굶어죽어가는 판에 정의인지 뭔지 그런 자신들에게만 철저하게 불평등하고 하등 소용도 안되는 것에 눈이 뒤집혀선….
다른 멍청한 귀족에 비해서 알리스가 좀 두드러지는 이야기긴 하군요.-_-;


카루셀에서는 억지로 '피해자의, 복종을 하는 배역'을 맡은 사람들이 무대를 깨지 못하고 지배자를 연기하는 군인의 말에 저항하지 못하는데, 그 땐 루시퍼 이펙트를 생각할 수밖에 없었지요. 상황이 얼마나 사람을 지배하는지.
그렇지만 그 국민들이 이번에도 너무 쉽게 복수를 포기하는 게… 그야 개인에게 원망의 화살이 돌아간 게 아니라 '귀족들'이라거나 '군인들'로 약간 뭉뚱그려져 돌아간 것도 없잖아 있긴 해요.
하지만 그 분위기라는 게 있잖아요? 너무 빨리 전환돼-_-; 이 사람들을 죽여봤자 얻는 건 아무것도 없쪄요 뿌우 하는 말에 선동자가 그, 그래, 맞아 나는 고통 받았지만 고통을 주고 싶었던 게 아니야… 라면서 흑흑 울고.
이들이 잘못한 게 아니고… 오히려 긍정적인 방향일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솔직히 장난하나-_-;;;;; 쥐가 고양이 생각해주고 앉았네.
필요할 때는 군인으로 마음껏 다른 약한 사람들을 '조종'했으면서, 정작 자신의 무기가 사라지자 군인이 아닌, 약한 민간인이 되어버리겠다고? 그렇게 군인은 역할의 가면을 벗으면 본래의 자신으로 돌아오면서 내가 '원해서' 한 게 아니다, '시켜서' 그럴 수밖에 없었다 말할 수 있지만 그 때문에 고통 받았던 사람들에겐 절대로 그 피해자의 가면이 벗겨지지 않거든요?

거기다 봉기를 일으켰을 때 3과에 구속되어 끌려가면서 "가족은 상관없잖아!"라고 대답하는 건 좀 웃겼습니다. 진심으로. 이게 전쟁을 했던 국가에서 살았던 국민 맞아요? 아니면 내가 살고 있는 국가가 존나게 팍팍한 건가?



이렇게 전쟁을 다룬 일본 만화를 보면 뭐라고 딱 꼬집어 말하기도 미묘하게 피해자들이 미적지근한 데가 있어서 좀 껄끄럽습니다.
강철의 연금술사에서도 이슈발 내란에 관련해서 사람들이 너무 쉽게 용서하고 쉽게 아무렇지도 않아졌던 게 계속 걸렸는데. 진짜 말로만 사과하면 끝인 것도 아니고-_-; 진심만 담긴 사과를 하면 용서가 됩니까? 그것도 그냥 개인적인 미안함, 개인적인 사과였지 공개적으로 책임 질 위치에 있는 사람이 사과하는 것도 아니며-_-;;;;;;;;;
이거슨 19세 미만 관람불가를 피하기 위한 편집자와 만화가의 노력인가, 아니면 그것이 저 나라 사람들의 '전쟁'에 대한 의식인가 구분은 어렵고.



[란델 올란드]

하여간 알리스 외에 란델 귀여워요 란델.<남주인공)
덩치는 산처럼 큰 게 겁쟁이에 소심하고 순한 성격이 점점 부각되고 있어서 귀엽습니다^m^
랜턴을 켜면 자신의 원래 성격이 아니라 두려움도 아픔도 제거 된 듯 무기를 부서뜨리고 사람을 죽이는 주입된 전투형 성격이 부각되기 때문에 그 갭에 괴로워하지만 그런데도 란델은 아직 군인의 가면을 쓰고 있습니다.
꿈에서 자신이 죽인 사람들의 망령에 붙들려 진창으로 빠지고, 죽이는 재주밖에 없다며 자신을 비하하고 있어도 어쨌거나 잊어 버리거나, 자신을 정당화 하는 재주도 없는 성실한 성격이기 때문에 더더욱, 군인을 그만두더라도 군복만은 벗을 수가 없었던 거겠죠. 살인을 그렇게 해댄 자신이 군인을 그만두고 행복하게 살아간다면 란델의 입장에서는 그것만큼 용납하기 어려운 일이 없으니까요. 적어도 카루셀에서 '시켜서 한 일이야!'라면서 바로 군인의 위치를 버리고 민간인으로 내려선 사람보다는 용기 있다고 생각합니다.
거기다 다행히 그저 일을 찾아다니고 있던 이전과는 달리 알리스를 만나 비교적 적극적으로 '살인'과 '전쟁'에 대해 떨쳐내고 스스로도 전재 청산에 힘을 쏟고 있어서 긍정적으로 캐릭터가 변해가고 있어요. 꺄호.

또 스스로의 잔재 청산을 시작하며 점차 전투형 성격과 란델의 원래 성격과의 괴리를 많이 보여주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래서 점점 귀여워져요. 캐릭터 방향을 바보로 정한 듯. 저로 말할 것 같으면 순한 성격도 좋아하고, 바보도 좋아하는데다가, 덩치까지 크면 완전 스트라이크 존이기 때문에 란델! 란델!
또 소위와 하사로 있고 싶다는 에피소드는 솔직히 잘 이해가 안 가긴 하는데=_=; 하여간 란델과 알리스와의 러브 라인은 그냥 한 눈에 반했어요 오호호 그런 게 아니라, 서로의 경계를 서로가 파악하면서 한 발자국씩 들어가면서 서로에 대한 호감이 짙어지는 느낌. 








[좌 오렐드 우 마티스]

오렐드 준위는 여성 편력이 강한 것이 덧붙여진 캐릭터인데, 같이 다니는 3과의 세트, 마티스 준위는 남자화장실 들어간 거 보기 전까지, 즉 5권까지 쭉 여자인 줄 알았습니다-_-;
그래서 언젠가 오렐드가 눈이 삐끗한다거나 임무 수행 중에 떰띵이 일어나 마티스가 여자라는 걸 확실히 인식해서, 마티스와 그전까지와는 다르게 부끄러워하는 분위기를 풍긴다거나, 마티스는 그전까진 '여자 꼬셨어~'라고 자기 버리고 놀러나가는 오렐드를 강하게 구속하면서 일에 집중하라면서 티격태격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었걸랑요? 알리스와 란델이 하는 걸 보면 이쪽도 아주 거부감 없게 부드~ 럽게 재미있을 것 같아서. 근데 왠걸? 남자?!
뭐, 뭔가 뒤통수 맞은 기분….
마티스가 남자 화장실 가는 부분에서 깜짝 놀라서 다시 처음부터 살펴보니 '같이 화장실 간다'거나 하는 일들이 있긴 있었습니다. 꺄 나 살려.orz




[행크스]

그러고보니 모두가 속한 3과의 과장인 행크스 대위…
과연 속에 구렁이 한 마리 정도가 아니라 백 마리 쯤은 키우고 있는 숨겨진 실력자였엉…. 다른 부대에 비해 편하다고 축제 부대니 뭐니 비웃음을 사는 과인데 우째서 알고보면 하나같이 죄다 엘리트 중의 엘리트?!

애니메이션 등장 인물 설명에서 안 나와서 이미지는 없지만 귀여운 스테킨 상사도 2과의 비밀 암호를 척척 해독하지 않나 서류 몇 장만으로도 돈이 흘러가는 전후관계를 알아채지 않나.;

덧글

  • Mathilda 2011/04/25 19:51 # 답글

    란델은 점점 소위밖에 모르는 남자가 되어가고............................
  • 파김치 2011/04/26 01:26 #

    Mathilda님, 둘 다 귀여워서 용서됩니다. 란델이 알리스 안 좋아하고 혼자 알아서 척척 했으면 이렇게 안 귀여웠을 거에요!
  • 본격 2011/04/25 20:13 # 삭제 답글

    남주가 히로인인 만화
  • 파김치 2011/04/26 01:26 #

    본격님, 정답! 멋있는 장면은 알리스가 더 많은 것 같아요. 란델은 귀여움 어필..
  • ㅇㅇ 2011/04/25 21:14 # 삭제 답글

    저도 이 만화를 보며 주인장님과 비슷한 부분에서 참 껄끄러운 부분이 많았습니다만.... 러브라인이 너무 좋아 계속 사모으고 있습니다.. orz 잊을만하면 작가가 자꾸 떡밥도 뿌려주고... 란델 귀여워요 란델...
  • 파김치 2011/04/26 01:28 #

    ㅇㅇ님, 전쟁은 역시 미묘하고, 어려운 소재니까요. 그래도 다른 전쟁이 소재인 만화보단 훨씬 부드럽게 풀어가고 있네요.
    후후, 특히 러브 라인에 주목하시는군요! 저도!
    란델 너무 귀여워요. 그 덩치에 그렇게 소심하고 귀여워서야 어디 내놓겠나요.
  • 사랑은빠바박 2011/04/26 10:43 # 답글

    흔히 말하는 사랑이라 하면 연인끼리의 사랑(또는 가족끼리의 사랑)만이 주가 되고 최우선 되지요. 각종 미디어에서 연인끼리의 사랑이 정답이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 놓습니다.

    그런데 사랑이라하면 2000년 전에 누가 말한 이웃끼리의 사랑도 있고 친구끼리의 사랑도 있고(찰진 이야기기 아니라 깊은 우정 같은거요) 상사와 부하사이의 사랑도 있습니다.

    카루셀에서 오렐드가 비터 소위에게 말한 건 그런거라 봅니다. 서로의 감정에 영원성을 부여 할 수 있는 사랑이라면 상관과 부하 관계가 연인사이보다 못할건 없다는 거겠죠.
  • 파김치 2011/04/26 15:25 #

    사랑은빠바박님, 음, 근데 상관과 부하 관계라면 언제나 한 쪽이 상관이고, 둘 사이가 동등해지는 게 아닌 듯해서요. 한쪽이 일방적으로 기대고 있는, 그런 기분이 들어요.
    물론 연인이나 가족의 사랑만이 최우선이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사랑의 방식이 있고 어떤 방식을 택해서든 두 사람 사이의 관계성을 끊지 않고, 그 관계성이 영원한 거라면 좋을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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