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안의 삶



간절하게 바라는 걸 꾼다고 하지만 밤의 흔적


하늘을 올려다보면, 먹물을 부어놓은 듯한 달이 없는 새카만 밤하늘 위로 촘촘히 별들이 빛나고 있었다. 유리조각을 잘게 깨어 뿌려놓은 듯 보이는 반짝이는 조그마한 꿀벌들.
또, 밤하늘을 길게 가로질러 오른쪽으로 강이 흐르고 있었다. 빽빽히 모여 젖줄기처럼 뿌옇고 희게 빛나는 별들의 강이 흐르고 흘러 새카만 산 아래로 그 찬란한 물줄기를 흘렸다.
은하수.
아, 그래, 저러니까 은하수라고 했을 거야. 깊고 커서 건널 수 없는 강.


어느 인디언들은 옥수수를 흘려 은하수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어디에서는 젖이 흘러서 은하수가 생겼다고 생각했다. 바로 하늘만 올려보면 보이는 이렇게 인상 깊고 아름다운 빛줄기에 아무런 이야기가 붙지 않을 리가 없다.
무섭게 짓눌러 압도되는 게 아니라, 저절로 입을 다물게 만드는 신비한 분위기가 흘렀다. 어떤 소리를 내도 저 광활한 별들의 소리에 묻힐 듯한, 조용히 귀를 기울이면 별이 흐르는 소리가 들릴 듯한.


자란 고향은 물론 시골이긴 했지만, 흔히들 '시골'이라는 단어에서 연상하는 목가적이고 향토적이며 시커멓고 때가 꼬질꼬질 낀 애들이 서울서 왔냐며 깔끔하게 차려 피부가 흰 아이에게 말을 거는 그런 「소나기」스러운 분위기까지는 나지 않았다. 몇십년대야, 그건.
어지간한 곳까지 아스팔트로 제대로 포장되었고(1차선이긴 했지만), 강이 있었지만 아직 뭣도 모르는 대여섯살 아이들이나 한 번쯤 들어가보고 싶어하는 더럽고 얕은 강으로 기껏해야 송사리나 살까 말까 했다. 개똥벌레? 한 번도 못 봤다. 시골은 그래도 시골이라 개구리며 뱀은 지천에 있었지만.
그러니까 하늘을 올려봐도 역시 눈앞의 광해만 덜할 뿐, 이미 많은 별들은 없어진 후였다. 은하수 역시 말로만 들었을 뿐이다. 혹은 조리개를 열어 환하게 밝은 하늘 위의 은하수 사진을 보거나.


그런데 지금 눈으로 은하수를 보고 있다. 아주 멀리, 조그만 머리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고 이해하기도 어려운 한참 위의 어딘가에서부터, 스스로 빛을 내는 거대하고 무거운 별이 흘렸던...과거의 빛이 눈으로 흘러 들어온다. 이상야릇한 기분이었다.
가만히 하늘을 올려보고 있는 와중에 열이 날 때처럼 시간과 거리가 뒤죽박죽이 되어서 너무, 자신이 작다고 느꼈다. 나보다 지구는 엄청나게 크고, 그 지구보다 태양은 엄청나게 크고, 그 태양보다 훨씬, 억과 같은 숫자조차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커다란 저 별들은, 마찬가지로 역시 조 정도로도 표현이 안 될 만큼 멀리 떨어져 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아득할 만큼의 시간을 달려온 빛은 이 조그만 지구의 하늘을 물들여, 먼지 같은 내가 그 스쳐지나가는 빛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 어마어마하게 크고 어마어마하게 멀리 있는 별들이 밤하늘의 끝을 잡고 옷을 터는 것처럼 탁탁 뒤흔들면, 맑은 소리를 내며 흔들려 부딪칠 잘게 부서진 유리조각 같다고 생각하면서.
아주 먼 듯, 혹은 아주 가까운 듯, 두 손을 모으면 선명한 그 검은 하늘와 별빛을 퍼올릴 수 있을 듯 했다.
꿈이라면 깨지 말았으면.





그렇게 바라는 순간 꿈이라는 걸 깨달아서 잠에서 깼다.
매번 이런 식이냐, 꿈이란 건!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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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 2011/06/07 20:22 # 삭제 답글

    글이 정말 아름다워요..
  • 파김치 2011/06/08 18:21 #

    ....님, 우, 우왕,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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