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안의 삶



드디어, 그림자 자국 읽었습니다


그림자 자국 - 10점
이영도 지음/황금가지



아무리 생각해도 드래곤 라자 월드에서 드래곤 너무, 정말, 진짜 불쌍해 죽겠습니다.T-T
무슨 엄청난 수식어를 다 가져다 붙여서 드래곤만큼 아름다운 생물은 없다며 추어올린 후, 자식 새끼 뺏고, 죽여버리고.
자식을 잃어 미쳐버린 드래곤의 분노가 드래곤 묘사 중에서 가장 효과적이고 아름답게 묘사되고.
바퀴벌레처럼, 혹은 개돼지처럼 보던 인간이 상황 판단 하지 못해 제 분을 못 이겨 빽 소리 지르면서 오로지 인간 위주의 도덕과 인간 위주의 결정을 드래곤에게 강요하고.(인간인 저는 만약 바퀴벌레나 개돼지가 저러면 뭐래는 거야 하면서 눌러 죽여버리고 싶어지지만 이 고귀한 드래곤님들은 일단 지성의 흔적을 인간에게 발견했고 또 라자가 있어서 바로 죽이지도 못하긔)
자신의 논리 때문에 인간 연놈한테 이용당하고.
병신되고,
또 병신되고.



...무슨 원한이라도 있나, 드래곤한테.
진짜 드래곤이라는 종족에 연민까지 느껴집니다. 드래곤 때문에 죽어간 인간도 수없는 건 마찬가지지만, 이토록 공을 들여 드래곤들을 미쳐가게 만드니.

굳이 비슷한 예를 들면, 고양님과 집사?
고양님은 아무 일 안하고 사료를 내놓아라 화장실을 치워라 날 위로 올려라(?) 기타 등등 명령을 하면 집사는 자기 돈 들여 키우면서도 해달라는 거 다 해주며 애지중지 불면 날아갈라 쥐면 깨질라 하는 것.
쓰고보니 하나도 예가 안 됩니다.
이딴 예를 든 이유는 그냥, 드래곤 자신의 논리를 자꾸 인간 연놈들이 이용해 먹는 게, 드래곤이 휘둘리는 게 아니라, 차라리 집사 자신에게 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고양이가 해달라는 거 해주며, 얼씨구 그래쪄요? 우리 고양님 내 가이드라인을 아는구나 존나 영악하네? 하는 심정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어요.


차라리 그 관계가 좋겠다고 싶을 만큼, 드래곤과 인간의 관계는 철저하게 인간이 드래곤을 빨아먹는 관계입니다. '라자'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하나의 국가에 종속되어 버린 드래곤들을 보세요.
드래곤이 인간을 통해 느꼈다고 생각하는 감정, 짧은 생의 격렬한 물결치는 사랑도 애정도, '라자' 때문에 억지로 함께 하다 보니 괜찮은 듯 싶기도 하다고 느끼는 착각(헉헉)이라고 생각될 만큼, 이건 뭐 아무것도 없어.
루트에리노 왕이 남긴 끔찍할 정도의 인간 위주의 세계관이라니!
아예 드래곤이 덩치만 큰 비만 파충류로 나오면, 그래, 그렇구나 하면서 꿈을 버릴 수 있는데, 이렇게 완벽에 가깝다며 자타공인된 지적이고 아름다운 생명체로 만들어 놓고 우째서!T-T

시에프리너가 미친 이후로는 너무 슬퍼졌습니다.
그림자 지우개로 몇 번을 지우고 또 지워봐도 그가 행복해질 미래는 전혀 나오지 않잖아요. 남지 않아야 할 예언자의 그림자 자국 때문에 몇 번이고 자식을 잃고 세계에서 지워지고.
춤추는 성좌가 암흑 속에서 다시 춤을 추기 시작했습니다.라는 문장에 아아아! 구, 구세주당! 했지만 읽어갈 수록 다시 으아악! 이 될 수밖에 없더군요.
뭐 이런 동화풍 주제에 내용이 이렇게 하드 코어해! 망할! 이영도가 모두가 해필리 에버 애프터★를 외칠 수 있는 엔딩 따위는 준비하고 있지 않을 거라고 알고 있었지만.
덥썩덥썩 잘도 죽이다니!T-T 덥썩덥썩 미쳐버리게 만들다니!T-T





도서관에서 「드래곤 라자」를 처음 읽은 주제에, 새삼 도서관에서 「그림자 자국」을 찾아본 적이 없는데, 무심코 눈에 뜨여서 읽었습니다. 뒤늦었지요. 나왔을 때 포풍처럼 까는 글이 워낙 눈에 많이 뜨여서 드래곤 라자 재밌게 읽었으니 추억은 추억으로 남겨둬야 하나 싶었으니까요.
다 읽어본 감상은 뭐 드래곤 좀 예뻐해달라능 징징...이긴 해도 역시 사야겠어요. 곱씹어보며 시에프리너나 이뻐해줘야지. 징징.


그 「드래곤 라자」의 후속작이라고 생각하고 보면, 역시 깜짝 놀랄만 합니다.
1인칭이었지만 오히려 「드래곤 라자」야말로 크라드메서를 직접 찾아가기 전까진 에피소드마다 동화풍으로 끝을 맺었잖아요. 후치 일행이 드래곤 로드에게 큰 소리 땅땅 친 것도...뭐...동화지요. 길시언이 죽고, 비로소 이야기는 그 죽음으로 인해 조금 비장미를 품기 시작하지만.
그런데 「그림자 자국」은 동화풍의 문체에 독자와 대화하는(혹은 가르치는) 식으로 설명을 곁들이는 주제에 이야기는 전혀, 동화풍이 아닙니다. 납치 감금 고문 회유...거기에 목적이 있는 정사라니, 동화풍의 문체이기 때문에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고 넘어가지만 그렇게 '다들 알죠?'하는 식으로 넘어가는 것이 가끔은 더 끔찍한 상상에 불을 지필 수 있기도 합니다.
모닝스타는 더욱더 정교해졌구요.

만약 그동안 이영도의 다른 소설, 특히 최근의 「피를 마시는 새」를 보지 않았다면, 유쾌한 「드래곤 라자」를 상상하며 봤다가 깜짝 놀랐을 겁니다.
10년간 훨씬 더 냉소적으로 변한 작풍도 그렇지만,「그림자 자국」은 어쨌든 유쾌한 스토리라고는 말할 수 없으니까요. 「드래곤 라자」와 같은 모험 활극의 냄새는 맡을 수 없거든요. 엄밀하게 동화풍이 되기 위한 필수조건(!), 후치처럼 공식적 주인공 이콜 죽지 않는,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해피 엔딩을 맞이할 인물이 없기도 하고요.
그건 눈마새 보다 피마새에서 두드러졌고 그래서 피마새와 같은 걸 각오하고 보면 재미있다고 느끼....전 느꼈습니다. 하여간 발랄한 해설자 덕분인가 무겁지는 않았어요. 이런 효과를 노리고 일부러 동화풍으로 쓴 건가 싶을 정도로.



후속작이기 때문에 전작의 향기가 어디서나 폴폴 납니다. 「퓨처 워커」도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었고, 일부 인물들은 심지어 출연도 했지만, 약간 다른 느낌입니다.
말그대로 전설이 되어버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샌슨! 샌슨 퍼시발! 칼도 남아있었고, 아프나이델은 심지어 핸드레이크며 솔로처와 어깨를 견줄 마법사로 남아있네요. 그림자 지우개라는 원흉을 남긴 마법사기도 하고. 이루릴은 여전히 출연하며 그전의 이루릴이 아닌, 누구에게든 손을 내밀어 친구가 될 수 있는 엘프가 되었죠. 테니스가 안 나온 건 좀 아쉽구만요.
하지만 후치는 진짜 종자였을 뿐인가!「드래곤 라자」 서문마다 압돌로메 어쩌구가 지혜롭고 어쩌구한 시민들에게 남기는 어쩌구한 책자를 실었는데 그 중에 한 번은 후치 네드발이 이름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샌슨 퍼시발의 자애로움 때문이라는 게 나왔었는데, 정말 딱 그렇게 됐네요. 퍼시발 좀 짱인듯.
물론 그것도 있지만, 발탄. 계속해서 바이서스의 눈의 들보였던 그 발탄.
한동안 발탄? 바이서스 풍의 이름은 아닌데, 라고만 생각하다가 그 발탄의 유래를 듣고 나서야 깨달았어요. 악!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운차이! 운차이 발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후치가 그랬었죠. 그런 논법은 추해요. 왜 왕이 되지 않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요 그래서 우리의 운차이는 왕이 되어씁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깨닫자마자 너무 키읔 남발 해버리고! 어우 반가워 운차이!ㅋㅋㅋㅋㅋㅋ
퓨처 워커의 운차이가 슬펐던 만큼 그림자 자국의 운차이 발탄의 자국은, 진짜 기뻐지네요.






덧글

  • 라히오 2011/07/02 06:58 # 답글

    이영도 글 너무너무 좋아하는데 아직 전부 다 읽지는 못했어요. 읽은 책은 안 가진 게 태반이고 일단 산 책도 아직 안 읽고 있는 게 절반이고; 이거 다 읽으면 이제 읽을 거 없어서 절망감을 느낄 거예요! 안 돼! ㅠㅠ 그래서 그림자 자국은 아직 사지도 않았어요;; 제 버릇 중 하납니다 이거; 미루는 거;;; 엉엉 ㅠㅠ
    근데 이래 다시 읽으니 너무너무 읽고 싶어지네요 ㅠㅠ 드래곤라자부터 다시 막 읽고싶어졌어요. 배잡고 뒹굴며 호흡곤란 일으킬 정도로 웃던 그 때가 생각납니다.
  • 라히오 2011/07/02 07:01 # 답글

    그리고! 드래곤에 대한 감상!!!!!!!!! 동감합니다!!!!!! ㅠㅠ 제기루 ㅠㅠ 왜 이 하름다운 드래곤님하를 이렇게 ㅚ롭히는 거야, 비루한 인간주제에!!! 하지마 이놈아! ㅠㅠ 엉엉어어유ㅠㅠ
    하고 볼 때마다 바르르 떨었습니다.
    그 영향이 좀 남았는지(원래 제가 그 전에도 용 로망을 좀 갖고 있긴 했지만) 하여간 그래서 '드래곤 길들이기'를 안 봤어요. 하찮은 인간 주제에 감히 또 드래곤을 밟는 거냐 용납할 수 없다능! 하면서;
    드래곤라자의 드래곤에 대한 끈적하고 저열한 저주같은 이야기가 느므 끔찍해서 눈물나게 분했습니다아으.
  • 라히오 2011/07/02 07:04 # 답글

    아, 아무래도 안되겠습니다. 그림자자국 사와야겠어요. ㅠㅠ 그리고 반천 집에서 드래곤라자 다시 꺼내와서 읽어야겠네요. 엉엉어어 ㅠㅠ 그리워요! 그립습니다! ㅠㅠ 에이우 그림자자도 마구 읽고싶어졌습니다! ㅠㅠ

    아… 도배 죄송합니다;;
  • 파김치 2011/07/02 17:03 #

    라히오님, 도배는 오히려 기쁘네요/ㅁ/

    저도 드래곤 라자 우연히 1권을 접한 후에 일주일도 안 돼서 12권을 다 읽었던 기억이 아련아련. 그것만으로끝났냐 하면 물론 아니고 지금도 일년에 한 번쯤은 재탕해 보는 듯 합니다. 완전히 외울 지경이에요.
    쟁여둘 수 있는 인내심이 없어서 재미있는 게 있으면 그 때 그 때 죄다 읽어버려야 하는 저는...! 괜찮아요 다 읽어도 축복받은 기억력으로 또 다 까먹고 또 읽으며 재밌으니까요ㅠㅠㅠ

    저도 용 로망이 있는지라ㅠ 드래곤은 드래곤이고 용은 용이라고 구분하려고 해도, 가끔 이렇게 현자와 같은 드래곤이 나와서 기쁘기도 하고 슬픕니다.
    한국 판타지에선 특히 드래곤을 용의 이미지와 혼용해서 쓰는 경향이 있긴 하죠. 하지만 결국 드래곤=용=좀 오래 살고 똑똑하지만 힘만 쎄고 바보 같아서 이용해먹기 좋은 생물체로 취급받는 거 보면 슬퍼져요. 그런 게 아닌데! 똑똑하고 오래 산다면서ㅠㅠㅠㅠㅠ흐구흐구.
    '드래곤 길들이기' 같은 경우에는 아예 말 그대로 '드래곤'이랄까, 날개달린 큰 파충류(...)기 때문에 별로 거부감 없이 볼 수 있었지요. 차라리 이런 경우가 마음이 편합니다. 아, 이건 정말 드래곤이야! 공룡이야! 라고 생각하면서 볼 수 있거든요.

    하지만 드래곤 라자 월드에서 드래곤은....ㅠㅠㅠㅠ우우우우ㅠㅠㅠㅠㅠㅠ그렇게 아름다운 생물체를 왜 그렇게 처절하게 괴롭히는지!ㅠㅠㅠㅠㅠㅠㅠㅠㅠ가끔은 비장미도 있지만 대체로는 인간에게 종속된 불쌍한 생명체ㅠㅠㅠㅠㅠ

    드래곤 라자->그림자 자국은 좀 놀랄만큼 달라져서 바로는 추천 안드리고, 사이에 눈마새와 피마새를 끼워넣어 읽는 방법을 추천드립니다. 꺄. 써놓고 보니까 제가 지금 뭘 추천하려고 하고 있죠?
  • 라히오 2011/07/03 07:30 # 답글

    아, 그 영화는 날개달린 비만 도마뱀 계열인가요. 오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기회 되면 봐야겠어요. :D
    눈마새는 다 읽었구 피마새는 아직인데 뭐 괜찮을 것 같습니다. 이영도 글 좋아한다는 말 자체가 똥꼬발랄 라자풍을 좋아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아닌 것 같으면서 무탈한 것 같으면서 잔혹한 이야기 딱딱한 이야기 잘 풀어내는 그 믹스가 좋다는 뜻인지라. 흐흐흣. 참 글 잘 쓰시는 분이죠!
    어제는 더위에 뻗어 외출실패했지만 오늘은 나가고 말겠어요! 서점으로…!
  • 파김치 2011/07/03 16:28 #

    라히오님, 고양이인데 몸이 날 수 있는 파충류라 생각하시면..! 똑똑하긴 하지만, 용과는 거리가 멉니다. 오히려 이런 게 안심이죠:D
    피마새는 눈마새보다 훨씬 더 딱딱하고 유머가 적어서 음, 네, 확실히 그걸 보다가 그림자 자국을 보니 좀 웃기는 것 같기도 하고..!;
  • 아카르 2011/07/04 13:14 # 답글

    전 외려 그림자 자국을 먼저보고 드래곤 라자를 봤어요[...]그 오묘한 기분[...]
  • 파김치 2011/07/08 17:30 #

    아카르님, .................................................................
    용자다! 여기 용자가 있어요 여러분!!!
  • 엘민 2011/07/09 11:29 # 답글

    에잇, 읽었는데 전혀 기억이 안나요 ㅠㅠ 머릿 속에 이 지우개 어찌할런지 ㅠㅠ
  • 파김치 2011/07/10 00:05 #

    엘민님, 아아아 머릿속의 지우개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괜찮아요 또 읽으면 또 새롭게 재미있을 테니까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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