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안의 삶



오늘의 독서한 겸 일기 일상


오늘 컴퓨터 방의 형광등이 나가서 책을 읽었습니다.
2주도 모자라 한 주 더 연장해 3주째 보고 있는데도, 반납하는 날이 며칠 남지 않은 오늘까지도 찔끔찔끔밖에 읽지 못해서 반납했다가 또 빌릴까 같은 허튼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하루만에! 그것도 몇 시간만에!
비바 나의 집중력을 외쳐야 하는가 아니면 컴퓨터에 휘둘리는 일상을 반성해야 할 것인가.
하여간 컴퓨터를 꺼야 합니다.

근데 귀찮음을 이겨내고 형광등하고 초크 사온 게 여기선 문제인 듯 합니다. 흔들거리고 삐걱거리는 의자에 대해 믿음을 가지고 발판 삼아, 형광등 갈아끼우자마자 이러고 있잖아? 안될거야 아마.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초반에 읽을 땐 그래서 어쩌란 거야! 하는 심정이 되어서 곧 그만뒀는데, 우연히 책정리를 하다가 그 뒤를 다시 읽게 됐어요.
느끼고는 있는데 말로나 상징으로 명료하게 표현하지 못했던 부분을 콕콕 집어볼 수 있는 느낌. 그래서 속도를 붙여 한 번에 파바박 읽는 게 아니라 느긋하게 단씩 나눠서 보고 있었는데…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보고 나니까 어쩐지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는 김빠진 콜라라는 느낌이 들어요.
단순하고, 순진하고, 다르게 말하면 조금 얄팍한.




어느 책을 읽느냐도 중요하지만, 언제 어느 책 다음으로 읽느냐도 상당히 중요하네요.
책의 인상도 바뀌고, 평가도 바뀌고.





최근엔 예전처럼 필통을 들고 다니지 않고 똥펜 하나만 장비하고 나가니 펜을 잃어버릴 일이 압도적으로 적어졌는데, 그로 인해서 매일매일 펜에 잉크가 떨어져서 버린 기록이 갱신되고 있습니다.
가장 펜을 많이 사고 쓰던 때엔 열 개를 사면 그 중의 한두 개 정도만이 끝까지 임무를 완수하고 사라졌지요. 대체로는 힘을 빡! 준 필기습관 때문에 끝이 쑥 들어가 버리거나, 누군가에게 빌려주고 까먹거나, 주머니에 넣었다가 잃어버리거나, 책상 위에 분명히 둔 것 같은데 없어졌다가 다음해 청소 할 때 먼지 구덩이 속에서 발견되거나, 하여간 다 잃어버리거나 고장났거든요.
이젠 색이 다양한 펜을 모으는 일도 없어서(쓸 일이 없으니까), 자꾸자꾸 잉크가 떨어진 펜이 필통 밖으로 버려질 뿐 채워지지 않네요.


덧글

  • 쪼히 2011/07/23 01:25 # 답글

    전 6월부터 가벼운 소설 외엔 책을 못읽고 있어요. 저에게 책만 읽을수있는 100시간과 휴양지를 누가 제공해줬으면 좋겠어요 ㅠㅠㅠㅠㅠ 아, 그리고 컴퓨터를 끌 수 있는 자제력도....
  • 파김치 2011/07/23 14:33 #

    쪼히님, 맨 마지막이 제일 중요합니다. 컴퓨터를 끌 수 있는 자제력...ㅋㅋㅋ큐ㅠㅠㅠㅠ
  • 엘민 2011/07/23 03:31 # 답글

    전 요새 책을 거의 못 읽고 있어요. 그런데 이전 책이 다음 책의 인상을 바꾼다는 거 정말 그런 거 같아요. 전 책상에 읽을 책을 쌓아두는 스타일인데, 날마다 순서를 바꿔놔요. 읽지도 않을거면서 ㅋㅋ
  • 파김치 2011/07/23 14:34 #

    엘민님, 그쵸, 어떤 책 다음에 읽느냐에 따라서 그 다음 책 인상이 흐릿해지기도 하고, 재미없어지기도 하고그래요. 신기하게도!
  • 여람 2011/07/24 21:48 # 답글

    하여간 컴퓨터를 꺼야합니다(2)
    끄덕끄덕. 공감합니다. 하지만 난 컴퓨터의 노예...OTL
  • 파김치 2011/07/25 13:58 #

    여람님, 저도 컴퓨터를 갉아먹는 한 마리의 농노. 딱히 컴퓨터를 위해 하는 건 없는데 일년 삼백육십오일 사시사철 떨어질 날이 없네요!ㅠㅠㅠㅠ
  • 쥰쥰 2011/07/25 13:31 # 답글

    으아 전 컴을 껐더니 맛폰으로 인터넷하고 그러더라구요 ㅎㅎㅎ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이것 당시 굉장히 충격적(?)으로 읽었었는데...
    저 책을 읽고 나면 김빠진 콜라처럼 느껴진다는 건가요?
  • 파김치 2011/07/25 14:03 #

    쥰쥰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이 좀 많이 충격적이었거든요. 처음엔 너무 수사가 많아서 지루했다가 중반부터 탄력받아서 후루룩 읽었어요! 화려한 듯 보이면서도 묵직하고 강렬한 감정에 이입해 있다가 보니 아직 이십대 초반의 사랑 얘기는(...), 네, 그전에는 재치있고 우화적이면서도 재미있다고 생각했는데! 도리언 그레이를 보고 나니 좀 순서가 안 맞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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