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안의 삶



요즘 읽은 책은 괜찮은 듯 안 괜찮은 듯 읽었습니다

달려라, 아비 - 6점
김애란 지음/창비(창작과비평사)


처음에 제목을 들었을 때부터 읽기 바로 직전까지, 몇 년 전부터 혜성 같은 신인이라고 이름은 많이 들었으니까 그 몇 년간 쭉, '아비'는 누군가의 이름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게 이름이 아닌 호칭, '아버지'였다니.
설마 에미애비할 때의 그 애비겠어? 하고 생각했었어요. 어머니와 아버지를 칭하는 말은 한국말 내에서도 참 다양하고 많은데, 그 중에서도 저 에미애비는 너무 구슬픈 느낌이 드니까. 애수 어린 호칭이고, 쓰일 때도 아이가 부를 만한 일은 없으니까 어린 나이의 사람이라면 입에 붙지 않을 텐데 표제작 제목이라니!
다들 그렇게 생각했었나 봐....

여하간 표제작이었던 '달려라, 아비'를 비롯해서 대다수의 단편엔 아버지가 빠지지 않네요. 어머니는 거의 등장하지 않거나, 지금은 이 자리에 없는 아버지를 대신해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이지, 딱히 중요인물은 아니에요. 심지어 아버지들은 이미 '나'를 버리고 도망갔어요. 임신 사실을 알자마자, 미아 보호소 근처에 버리고, 쓰러진 어머니와 나를 남기고.
그래서인가, 그렇게 많이 등장하는 아버지들은 친근감 느껴지는 "아빠"라는 호칭을 안 쓰고 다 "아버지".

아니면 지나치게 유쾌해 '나'에게 농담을 하는데, 친구 같은 건 아니고...
어느 아버지들이나 굉장히 밀착되어 있고, 자식('나')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옭아매는데, 마치 선을 그은 것처럼 아버지는 한 단계 높거나, 다른 차원에 있어요. 교류가 아니라 일방적으로 아버지의 영향이 나에게 미치는 것 뿐.


「나는 편의점에 간다」는 흔한, 하나의 거대한 강철공장과 같은 사회가 평등화시키고 단절시키는 개인과 개인, 인파 속의 고립… 뭐 그런 단편입니다.
사근사근하다 못해 지나치게 아는 척하며 들척지근하게 굴다가도 지갑을 두고 오자 "가지고 오세요."라고 안면을 바꾸는 세븐일레븐 편의점 직원과 "손님, 죄송하지만 삼다수나 디스는 어느 분이나 사가시는데요."의 드라이한 큐마트 직원의 그 두 가지가 공존하는 보통의 생활.
근데 저는 오히려 들척지근하게 굴 때는 세븐일레븐을 꺼려하다가, 자기 필요할 때 그 들척지근함이 더 커지기를 바라는 심보가 더 이상한 것 같은데. 교묘하게 세븐일레븐 이상해~ 라는 뉘앙스로 쓰여있기 때문에 읽을 땐 못 느끼다가 뒤늦게 생각해보니 그러합니다.



다잉 인사이드 - 10점
로버트 실버버그 지음, 장호연 옮김/책세상


'영웅도 스타도 백만장자도 되지 못했던 초능력자.
이것은 놀라운 능력을 낭비해버린 한 인간의
외롭고 기묘한 삶에 대한 이야기다.'


책 뒷표지에 쓰여진 글.
한 줄로 데이비드 셀리그의 이 일대기가 되네요. 불쌍하고, 불행하고.
같은 능력을 가졌던 톰 니퀴스트 역시 영웅도 스타도 백만장자도 되진 못했지만, 그는 완벽하게 자신과 자신의 능력을 통제할 줄 알고, 적당히 그 능력을 자기 보신을 위해 쓸 만큼 괜찮았는데.
그만한 능력이 있는데 고작해야 리포트 대출하며 근근히 생활하는 데이비드 셀리그와 진짜 너무 대비되고요. 왜 이렇게 약해.
능력은 '젊음'으로도 많이 치환되어 그려지고 그런 이미지도 많이 나오는데, 그냥 언제까지나 능력과 젊음이 자신에게 있을 줄 알고 퍼 놀았던 데이비드는 베짱이가 되었슴다.

마침내 젊음은 모두 소진되고, 정전이 찾아왔을 때, 데이비드는 서로의 마음을 알기 위해 기나긴 탐색을 해야하는 보통 사람이 되어버렸어요.
예전이었다면 조금 집중만 하면 알았을 일을, 겉으론 웃고 있지만 속으론 비웃고 있는지 칼을 갈고 있는지 더이상 모르는 채 숙맥처럼 구는 데이비드를 보면서 갑자기 「앨저넌에게 꽃을」이 생각나서 슬픈지, 괴로운지 그 비슷한 심정이 됐어요.





화성의 공주 - 4점
에드거 라이스 버로우즈 지음, 최세민 옮김/기적의책


결국 인간의 눈으로 봐서 예쁘면 착하고 품성이 좋고 고귀하고, 인간이 보기에 나쁘면(=못생기면) 무지몽매하고 거칠고 잔인한 거냐.
문득 SF가 아닌 판타지에서의 오크와 엘프가 생각났지만 접어두기로 했습니다. 결국 SF든 판타지든 다른 종족이라는 건,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한계? 가 아니라 마지노선은 있나봐요.

그래도 그렇지 참 노골적이라 헛웃음만.
주인공이 뭐 하나 흠잡을 데가 없는 게 흠일 정도로 완벽남으로 설정된 것도 요즘 경향은 아니죠. 책 소개에 자꾸 버지니아 촌놈, 촌놈하는데 실제로 촌놈이기라도 했으면 좀 덜 약올랐을 듯.
오히려 주인공 존 카터는 신사라고 자기 입으로 몇 번이고 말하면서 신사는 무슨, 금방 열받아서 씩씩대는 코뿔소 같은 존재고, 여자에 빠지면 상황판단 못한다는 게 흠임.ㅇㅇ


오래 전에 쓰인 SF엔 화성인, 금성인이 자주 나옵니다. 광년이라는 끔찍하게 먼 단위를 안 쓰고 아직(...) km의 단위로 표현할 수 있고, 지구의 하늘에서도 보이는 것도 알맞고. 이 드넓은 태양계에 설마 우리만 있진 않겠지? 하는 소박한 믿음이 있어서 좋아해요. 대부분 좋은 이웃은 아니지만.
스페이스 오페라, 단순한 돌덩어리가 아니라 화성에 누군가가 살고 있다는 설정은 좋아하는데. 참 좋아하는데.-_-; 설정에 별 한 개 반 주고 들어갑니다.-_-;;;





덧글

  • 히카리 2011/09/25 18:58 # 답글

    달려라 아비 재밌을 것 같네.
  • 파김치 2011/09/25 22:44 #

    히카리 언니, 그럭저럭 재미있게 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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