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안의 삶



엔더 시리즈 두권, 게임과 그림자 읽었습니다



엔더의 게임 - 8점
올슨 스콧 카드 지음, 백석윤 옮김/루비박스


아이는 무조건 둘만 낳는 미래 지구에서 셋째 아이로 태어난 엔더.
형인 피터는 영리하지만 지나치게 잔인했고, 누나인 밸런타인은 영리하지만 지나치게 유순했다. '그 아이'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 정부는 셋째를 그들 가족에게 허용한 것이다. '그 아이'란 외계에서 침공해 온 버거를 물리칠 영웅.
여섯살 때 시험에 합격한 엔더는 외계로 나아가 그처럼 뽑혀온 아이들 사이에서 생활하게 된다. 기대를 한 몸에 받아 가혹한 훈련은 이어지고, 주변 아이들은 그런 엔더를 시기하고 미워한다. 엔더는 자신의 내부에서 피터의 그림자를 찾으며 잔인해지는 자신 때문에 괴로워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완전히 이겨야 다시는 지배당하지 않으리라고 잔인하게 자신에게 도전하는 자를 꺾는다.
한편 지구에서 피터와 밸런타인은 서로의 성향과는 반대로 네트에 글을 올려 버거를 물리친 이후의 세계를 생각해 보라며 선동, 수많은 추종자들을 얻는다.
엔더는 주어지는 난관을 극복하고 모든 게임의 승리자로 마지막 게임을 하기 위해 버거의 모행성의 앞까지 날아간다. 그리고 마지막 게임 후에 놀라운 진실을 알게 된다.



엔더도 그랬지만, 시험에 뽑혀 올라온 아이들은 처음에 고작해야 여섯살, 또 상급생이라고 해봐야 여덟살이지만 마치 이미 어른인 것처럼 생각하고 말한다. 거슬릴 것까지는 아닌데 가끔 엔더나 아이들의 나이를 말할 때면 깜짝깜짝 놀란다. 다나까의 문장보단, 그 문장에서 포함하고 있는 생각이 보통 또래의 생각은 아니다. 그 시대를 훌쩍 뛰어넘고 어른이 되어버린 것처럼.
하지만 아주 똑똑하고 재능이 있는 아이들을 모아놓았는데도 결국 아이라는 걸 빼면 비교적 보통 어른하고 비슷하다는 게 단점. 팀을 짜서 게임을 하는 이야기가 대부분인데, 엔더가 생각해낸 작전은 왜 아무도 그 전에 생각해내지 않았는지 의아할 정도로 룰이 단순하고 허술하다. 콜롬버스의 달걀일 수도 있지만.
그러다보니 책 반 정도를 차지하는 게임은 대개 엔더가 또 뭔가 다른 아이들은 생각하지 못했던 작전을 생각하고 철저하게 훈련해서 그걸로 이기겠지, 하는 생각이 들어 좀 지루했다. 당연하지만 룰을 점점 엔더 쪽에 불리하게 바꾸는 등 누가 봐도 엔더가 '그 아이'고 특별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도록 프레셔를 주긴 한다.
그런데 엔더가 겉으로는 잘해도 속으로는 자포자기하고 있고, 주변에 전혀 관심이 없이 자신의 내면에 따라 움직이는 데스크 게임에 집중하고 있어서 그 프레셔가 별로 두드러지게 보이지 않는다.
과도하게 기대받는 영웅의 괴로움, 잔혹한 자신의 내면에 대한 고뇌로 인해, (허세는 없지만) 전반적으로 어둠에 다크에 쩔어있는데, 읽을 당시엔 그런가 싶기도 하다가도 결국 재능 있는 자의 배부른 소리 아냐? 싶어지는 게….

그래도 술술 다음엔 또 어떻게 될지 쉽게 읽을 수 있다. 가벼운 킬링타임용으로 좋다.
불행히 예전 알라딘 소개문이 스포일러 해줘서 어떻게 끝나는지 다 알고 있던 게 약간 FAIL, 그 때문에 더욱 중간의 게임이 지루했다. 근데 끝을 알고 보고 있으니까 엔더가 더 불쌍해지긴 함ㅇㅇ
게임이나 그런 것보단 엔더가 어떻게 피붙이와 떨어져 친구 하나 없이 고독에 삐뚤어지는지-_-; 그게 더 매력적인 소설.

엔더와 알라이는 전술을 협의하고 있었다. 그때 셴이 그들에게 다가왔다. 그는 잠시동안 이야기를 듣더니 별안간 알라이의 어깨를 잡고 소리쳤다. "가자, 꼬마들아!"
알라이는 웃음을 터트렸고, 엔더도 전에 상급생들과 싸웠던 일을 생각하고 미소 지었다.
갑자기 그들이 엔더의 눈치를 살폈다.
"미안해, 엔더." 셴이 말했다.
미안하다고? 대체 뭐가 미안하다는 거지? 나와 친구인 것이?
"알다시피 그때 나도 함께 있었잖아." 엔더가 말했다.
그들은 엔더에게 사과했고 다시 연습으로, 엔더에 대한 존경심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엔더는 깨달았다. 그들의 웃음과 그들의 우정에는 자신은 포함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하긴 어떻게 나를 동료라고 생각하겠어.
내가 웃기를 했나, 함께 어울리기를 했나.
그저 교관처럼 옆에 서서 지켜보기만 했으니.
결국 그들에게 나는 교관이자 전설적인 군인일 뿐이지 친구는 아닌 것이다.
엔더의 게임, 올슨 스콧 카드, 루비박스, p226~227











엔더의 그림자 - 4점
올슨 스콧 카드 지음, 나선숙 옮김/루비박스


「엔더의 게임」과 바로 같은 시간대로, 엔더의 조에 편성되었던 '빈'의 이야기.
「엔더의 게임」 스포일러인데, 모의 훈련인 줄 알았던 버거의 모행성 앞에서의 게임이 실은 실제의 전투였다는 진실을 위해 엔더가 자폭 명령을 내렸던 전투원에 대해 「엔더의 게임」에서는 전혀 내용이 없는데, 미약하게나마 「엔더의 그림자」에서는 그 모습이 보인다.
왜냐하면 빈은, 그 사실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엔더의 그림자」는 마음에 안 든다.
훨씬 더 잔인하고, 필요한 경우에만 사람의 마음에 들기 위해 애쓰고, 머리가 지나치도록 잘 돌아가는 아이로 빈이 설정되었기 때문에.
엔더도 물론 머리가 좋았고, 사람들에게 자신의 명령을 듣게 했지만, '의식적인' 노력은 적어도 책 내에서 설명하지 않았다. 영향력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지만, 공식적인 입장에서 영향력이 있고 사적으로는 위에 따온 것처럼 소외되었다고 혼자 다크다크 하고 있었으니까.
빈은 그것이 '어떻게' 되는지 이해 하지 못한다. 다크다크 하고 있는지 아닌지 알 바 없고, 어떻게 공식적으로 영향력이 있는지. 빈은 오히려 엔더보다 테스트 점수도 높고, 머리도 좋다. 물론 리더쉽이나 카리스마는 결코 지능이 높다고 해서 덩달아 높은 게 아니다.
하지만 대체로 엔더는 학교에서는 말없이 앉아있었고, 거의 왕따였고, 리더쉽의 파편조차 찾을 수 없었다. 거기에 형인 피터에게 잔인하게 눌려있었다. 무의식 게임에까지 따라올 정도로 그 트라우마는 크다. 여하간 엔더의 속에 아직 숨겨져 있던 '무언가'를 어른들이 보았다고 하면 좋다. 그런데 그 '어른'이 똑똑하거나 아니면 지휘관의 재능이 뛰어나고 하면, 그건 아니고.
무엇보다 피터의 잔인성은 알아본 그들이 빈의 상대였던 아킬레스의 잔인성은 왜 못 알아보고 양성 학교에 보냈지? 그게 중산층의 아이와 하루하루가 도전이고 살아남기 위한 사투였던 길거리 아이의 차이인가? 잔인한 것으로 치면 물론 아킬레스가 압도적이고 직접적이다. 그런데도 테스트를 쉽게 속일 수 있었다.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그 '어른들'이라는 것은 별로 믿을 게 되지 않는 것이다. 「엔더의 게임」에선 전적으로 아이들을 통제하고 완벽하게 재능을 찾아내는 것처럼 그려지던 '어른들'이.
소위 천재를 모아놓았다고 해도 모으는 개개인의 취향 차이가 있으며, 그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누가 진정으로 괜찮은 지휘관인지, 혹은 괜찮아 '보이는' 지휘관인지 구별하지 못한다.
엔더가 처음 들어갔던 팀의 대장이 그렇다. 그는 교사들의 눈에 괜찮게 '보이는' 지도자다. 그러나 실제로 처음 엔더가 들어왔을 때 그를 제대로 쓰지 못했고, 엔더가 고안한 새로운 작전에 질투심만 불태웠다. 그런 그를 엔더는 그냥 '이런 대장 아래에선 위험하다'고만 생각해 다른 팀으로 옮겼을 뿐, 그런 무능력한 자가 어째서 대장이 됐는지 궁금해 하지 않는다.
하지만 빈은 그걸 생각한다.
교사들이 보기에 낙오자지만, 사실 제대로 쓸 수 있다면 능력이 좋은 사람으로 팀을 만든 것도 빈이었다. 주위에 관심이 없던 엔더는 떨거지 팀으로 알았고, 그 와중에 자신이 당한 것처럼 빈에게 조금 프레셔를 주기도 한다. 이를테면 제일 작은 얘가 제일 똑똑하네, 나머지는 바보냐, 뭐 그런 식으로 빈이 주변의 시기를 받도록. 그런데 빈이 테스트 1위라는 건 거기 모인 누구라도 아는 사실이었던 것이다. 엔더 빼고.-_-;; 엔더 바보 만드네.-_-;;;;
이렇게 엔더를 병신으로 만드는 와중에, 빈 역시 설명할 수 없는 매력으로 인해 엔더에게 대책없이 끌린다.
「엔더의 게임」은 단지 똑똑한 아이가 제멋대로의 어른의 사정에 눌려 질질 끌려다니는 이야기로밖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엔더의 그림자」는 더 잔혹하고 비열한 사회다. 그런데도 자꾸 「엔더의 게임」과 겹쳐야 하니까 엔더의 설명할 수 없는 매력 지수를 높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빈은 아무도 궁금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교사들의 생활 공간을 탐험해 이들이 정말 무엇 때문에 돈을 들여 전세계에서 똑똑한 아이를 끌어모아 이 짓을 하는지, 숨긴 것은 무엇인지 추리하고, 엔더의 팀을 구성하는 등등, 엔더가 깊이 생각하지도 않았고, 혹은 자신의 능력으로 해냈다고 생각한 일을 뒤에서 편하도록 조작한다.
책을 읽고 있으면 엔더는 높은 카리스마로 그냥 위에 허수아비처럼 앉아있을 뿐, 실제적으로 일은 빈이 다 해줬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특히 마지막 게임은 빈은 완전히 '어른들'의 속셈을 알고, 그 머리 위에 서있었으니까. 그래서 점차 한계에 부딪쳐 망가지는 엔더를 대신해 반쯤은 게임을 지휘하기도 한다. 아나 진짜 엔더 병신 만들고 말입니다.

나쁜 의미로 「엔더의 그림자」는 현대적이다. 스토리나 인물 모두가 현대적으로, 더 비열하고, 잔인하고, 속이고, 남들에게 자신을 꾸미고, 비틀려 꼬여있다. 옛날 소설에 좋은 사람만 나오는 건 아니지만, 좀 더 간결하게 악의조차 선명하고 오로지 악의로 순수한 느낌. 좋게 말하면 순수한 거고, 나쁘게 말하면 단순한 거고. 초반부터 아킬레스와 피터의 대비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엔더의 게임」를 쓰고 「엔더의 그림자」를 쓰기까지의 20년 갭이 그림자를 더 현대적으로 만든 듯 하다.



덧글

  • fgf 2011/12/27 20:31 # 삭제 답글

    엔더시리즈 예전부터 재밌다는 얘기는 많이 들었는데 청소년용이라는 얘기도 많이 들어서 손이 안가는
  • 파김치 2011/12/27 20:37 #

    fgf님, 확실히 엔더의 게임은 주변의 또래나 나는 몰랐던 재능을 '어른들'이 알아서 키워가는 이야기라-_-; 청소년용이라고 하면 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네요. 성장소설으로도 볼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보단 그냥 가벼운 킬링타임용으로 보시면 될 것 같아요.
  • 카일룸 2011/12/28 00:58 # 삭제 답글

    말 그대로 게임으로 시작해서 게임으로 끝나더군요.
    저도 가벼운 마음으로 잘 읽었습니다. 근데 그림자는 딱히 흥미가 안 생기더군요. 게임에서 다 나온 내용이니... 빈이라는 캐릭터도 크게 마음에 들지는 않았구요.

    좋은 감상 잘 보고 갑니다.
  • 파김치 2011/12/28 14:58 #

    카일룸님, 게임은 가볍게 읽었는데, 그림자는 20년의 세월의 두께가 느껴지더군요.;
    빈은 엔더와 비슷한 느낌일 줄 알았는데 완전 너무 교활했구...
  • 엘민 2011/12/28 20:17 # 답글

    저도 재밌게 읽었었어요. 그림자는 아직 보지 못했는데 한 번 봐야겠어요. :D
  • 파김치 2011/12/28 23:36 #

    엘민님, 제게 그림자의 의의는 현대 사회는 각박하고 무서워졌구나(...) 정도였습니다.;
    엔더나 빈이 문제가 아니라 작가가 새로 보인다는 점에서 정말 즐거웠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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