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안의 삶



점성술 살인사건, 이럴 수가… 읽었습니다


점성술 살인사건 - 6점
시마다 소지 지음, 한희선 옮김/시공사


트릭 스포일러 있음!
하지만 소년탐정 김전일 탐독해보신 분이라면 상관없음…




점성술 살인사건에서 총 두 편의 수기가 나오는데, 그 수기는 다 이런 글씨체로 되어 있다.


심지어 수기는 꽤 길다.
어떻게 한 두장도 아니고 몇십장을 이딴 글씨체로 박아넣을 생각을 했지? 뭐하자는 거야? 읽으면서 돌아버리는 줄 알았다. 눈은 아프고 생각만큼 쭉쭉 내용도 나가지도 않고 딸이 여섯인데 12 황궁이니 혈액형이니 어쩌니 하는 이야기가 사전처럼 나열되니까 첫번째 수기만 한두장 넘기고 덮고 넘기고 덮고 해서 일주일 넘게 본 듯.

그렇게 보니까 물론 내용도 잘 이해가 안 가서, 하여간 어떤 남자, 즉 우메자와 헤이키치가 이상적인 여인인 아조트(Azoth)를 만들기 위해 여섯 딸들을 토막내고 싶다- 딱 이만큼만 이해할 수 있었다. 별자리로 인해 신체 일부가 강화되고 뭐 어떻고 전처와 후처의 이야기도 나오는 듯 하지만, 수기만으로는 무리. 다시 읽기도 싫다.
자세한 이야기는 이른바 홈즈 역할인 미타라이와 또 왓슨 역할인 '나', 이시오카가 40년 전의 풀리지 않는 살인사건에 대해 이야기하는 와중에 더 잘 알게 되었다. 자칭 추리물 광인 이시오카는 40여년 전의 미궁 속에 빠져있던 살인 사건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었지만 미타라이는 모르는 상태. 그래서 자연스럽게 이시오카가 이것도 모르냐 구박하면서 야금야금 알려주는 형태.

수기의 주인인 우메자와 헤이키치는 밀실에서 살해 당했고, 거기에 더해 연이어 여섯 딸들이 모두 행방불명, 수기에 쓰여진 대로 몸이 잘려나간 채로 발견된다. 시간 순으로 차근차근 우메자와 헤이키치 밀실 사건부터 시작해, 정보교환이라든가 홈즈와 왓슨의 대담이 이어지다 이런 대목이 등장했다.


"흠, 그럼 내가 계속할게. 침대에는 바퀴가 달려 있었어. 침대에 가까운 쪽 천장의 유리를 빼고, 갈고리가 달린 로프를 한 줄 내려서 침대에 걸고 천장 아래로 끌고 와. 헤이키치는 잘 떄 수면제를 항상 먹었어. 그것도 상당량을. 신중하게 하면 깨지 않아.
그리고 같은 방법으로 갈고리가 달린 로프를 세 개 더 내려서 침대의 각 모서리에 걸고, 천천히 들어올리지. 침대에 누운 헤이키치가 천장 근처까지 오면, 청산가리를 먹이든지 손목을 긋든지, 뭐 방법은 단정할 수 없지만 자살로 보이게 죽일 작정이었지.
그런데 계획과 실제는 크게 달랐어. 어쨌든 연습은 못하니까 바로 실행. 네 명이 각각 네 줄의 로프를 당겼는데, 막상 해보니까 너무 어렵고 호흡이 안 맞아서 천장 근처에서 갑자기 삐끗해서 침대가 기울어졌지. 그래서 헤이키치는 거꾸로 떨어졌고. 좌우간 2층 바닥을 뜯어낸 공간이니까, 천장 가까이에서 아래까지는 높이가 15미터는 돼. 그러니 절대 살 수 없지."

점성술 살인사건, 시마다 소지, 시공사, p100



?!?!?



이거 어디서 봤던 트릭 아니에요?
여기에서는 거꾸로 떨어졌다는 둥 제대로 손발이 안맞았다며 실패했다고 하지만, 심지어 내가 아는 '그것'에서는 성공했었는데?
순간 나의 만화 역사의 알파요 오메가이자 바이블이었던 그 만화가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음. 아니야. 아무리 그래도 만화에 썼던 설정을 소설로 낸다든가 하는 그런 이야기라면 서문에 쓰여있었겠지.

이 때까지 나는 아직 '시마다 소지'라는 사람이 누구인지, 이 소설 자체가 몇 년도에 발표되어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어서-_-; 근심을 억누르지 못하고 역자 후기라든지, 몇 년도에 나온 소설인지 찾아보려고 후르륵 뒤로 가다가




발 to the 견

아앙?!!?!?!?

그림만 봐도 알겠네여….
이건 이제 확실해. 소년탐정 김전일의 미이라의 저주, 즉 육각촌이었다.
어떤 트릭인지 알겠당… 범인도 알겠당…
딸 중 하나는 살아남아있고, 그 딸이나 그 딸과 관계가 깊은 남자가 범행을 저질렀겠근영….

이쯤 되니 당황을 넘어서 황당하기까지 했는데.
소설 내의 연도가 1979년이고, 살인 사건 자체는 그보다 또 40년 전의 이야기라 예스러운 향취가 느껴지는 것은 당연한 일로 생각했다. 그러니까 예를 들어 교고쿠도 시리즈처럼 부러 예전 시대로 설정하고 쓰인 글인 줄 알았단 말이지!
하지만 실제로 이 시마다 소지의 등단 소설이 발표된 것은 1981년 말. 엌 실시간이었네요.


후기에서도 확실히 쓰여있는데,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트릭의 골자를 소년탐정 김정일에서 무단도용(!)해서 팬들 사이에서는 난리가 났었다고 한다. 심지어 소소한 침대 트릭까지 죄다 베꼈으니.
소년탐정 김전일 애장판에서는 편집부에서 육각촌 에피소드 앞에 시마다 소지 원작의 점성술 살인 사건을 먼저 읽어보시라며 적어준 모양이지만, 애장판 이전엔 그런 게 있었을 리가!
츠야마 사건이야 워낙 유명했던 실화였으니 할아버지도 손자도 사이좋게 그 원형을 공유했다고 치지만, 야, 이건 진짜 넘 심하지 않아요? 완전 트릭을 베껴 썼잖아. 알고나서 어처구니가 없어서 진짜.

생각해보니까 만화 자체가 긴다이치의 손자라며 (아마 결혼도 하지 않고 평생 쏠로로 살아온) 긴다이치 쿄스케의 이름을 팔아먹으며 생겨난 긴다이치 하지메 소년 아니었던가-_-;;;;;;;



저 그림을 보자마자 솔직히 재미가 반은 뚝 떨어진 게 사실이다. 트릭은 알았고, 조금 더 읽다 보니 다케고시 분지로라는 사람의 수기가 나오는데, 그걸 읽어 보니 확실히 범인은 딸 중의 하나라고 확신하게 됐거든. 이제 궁금한 것은 '왜' 그런 일을 했는가일 뿐.

하지만 미타라이와 이시오카가 그것을 짐작할 수 있을리는 없고, 주변 인물을 탐사하러 교토로 간다.
이시오카는 꽤나 쭉 맨 처음 살해당한 헤이키치가 사실은 살아있다는 설, 그래서 딸들을 죽인 것은 헤이키치로 아조트를 어디선가 만들었다는 설을 지지한다. 교토로 가서 미타라이와 따로 행동을 하게 되면서 이시오카는 자신의 설을 지지해 내내 며칠간을 헤매고 다닌다. 즉 독자도 역시 홈즈는 내버려두고 왓슨의 추리만을 따라서 며칠간을 헤맨다.
이시오카의 추리(!)에 오오 예리하다! 그럴듯하다! 하는 생각을 못하는 게 진짜…
결정적인 트릭이 뭔지 알고 있는데ㅠㅠㅜ

사실 육각촌을 안 봤다고 해도 헤이키치가 뒤바뀌어 살아있어 아조트 제작을 위해 딸들을 죽였다는 설은 그다지 신뢰를 못했을 것 같다-_-;; 대체로 탐정 소설에서 보란 듯이 쓰인 수기 따위는 믿지 않는 게 철칙이겠지? 특히 범행 계획을 썼다든지, 누군가에 대한 원한을 불태워 죽이기 위해 트릭을 쓸데없이 복잡하게 짜는 등의 수기는.

여하간 홀랑 수기에 넘어간 이시오카는 계속해서 헛다리를 짚고 또 짚고 또 짚다가, 기한의 마지막 날 미타라이의 퍼즐 한 조각을 스스로도 모르는 채 채워준다.

그래서 사건은 40년만에 해결됐고, 미타라이의 이름은 조금도 나오지 않은 채 두 번째 수기를 가져다 준 그 경찰의 공으로 모두 돌아가 끝나는데.


나는ㅋㅋㅋㅋㅋㅋㅋ좀ㅋㅋㅋㅋㅋㅋㅋㅋ이 아니라 완전 찝찝하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게다가 점성술 살인사건은 40년전의 일이라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은 가운데 더듬어갈 뿐이라 사건 자체는 먼 반면에, 소년탐정 김전일에서는 살인사건이 실시간이라 충격의 강도가 세고, 거기에 비극적인 요소가 있어서… 열화판이긴 해도 김전일 쪽이 더 좋음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미타라이는 재미있는 가치관의 사람이지만, 그 멸시적인 어조를 견디기 싫다. 아예 균등하게 인간을 멸시하면 되는데 자신의 취향에 따라 멸시가 들쭉날쭉함. 여자는 타산적이라느니, 홈즈는 멍청이지만 좋다느니 하는 게.

자기는 어느 정도만 충족되면 명예도 필요 없고, 돈도 필요 없는 안분지족의 사람이라고 생각하나 본데, 그 제멋대로의 가치관이 싫다. 자기에게 없고 반대되는 성향이라서 타산적이라느니 훌륭하지 않다느니 그렇게 말해 스스로를 높이는 것 같단 말이다. '(…) 천 명에 하나쯤은 훌륭한 여자도 있을 거야. 자신의 손익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이익을 고려해서 자신의 담보는 계산에 넣지 않는.'라고.
게다가 홈즈는 멍청이네 바보네 실컷 까고 난 다음에 실은 인간적인 매력이 있어서 좋은 거야^^ 하는데, 거기에 살짝 감동하는 이시오카도 멍청이다-!!!!!!!
타산적인 거야말로 네가 좋아하는 인간적인 거 아니냐?


그렇다고 비교해 긴다이치 하지메가 멀쩡한 탐정이란 건 아니지만.
새삼 에피소드 확인하느라 다시 봤는데 "주머니에 뭘 넣었길래 이렇게 불룩해?"라고 미유키가 말하는데… 야… 너무 심한 드립이여….

아 어쩜 알게 되면 알게 될 수록 김전일 작가가 싫어질 일만 나오지?ㅋㅋㅋㅋㅋ
명탐정 할아버지라는 긴다이치 쿄스케가 일본의 국민탐정이고, 그걸 도용(!)했다고 알게 된 것도 충격과 공포였는데, 이건 진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 충격적이어야 할 트릭도 소년탐정 김전일 때문에 제대로 못 느꼈고, 캐릭터가 마음에 드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고, 심지어 수기의 글씨체 때문에 짜잉은 짜잉대로 다 났기 때문에 그냥 쏘쏘한 작품.


덧글

  • greenmovie 2012/03/30 03:34 # 답글

    열받아서 다다다다다다다 써 내려간 독후감이네요.^^ 김전일에 대한 이야기는 모르고 있었는데... 하늘 아래 새로운 건 없다지만 "이렇게 영감을 받았습니다." 한 마디면 될 걸, 그걸 표시를 안해서 이렇게 파김치님을 실망시키다닛! 떽!
  • 파김치 2012/03/30 13:06 #

    greenmovie님, 진짜 보면서 넘 허탈해졌었어요ㅠㅠㅠㅠㅠㅠㅠㅠ
    소년탐정 김전일도 아무 것도 모르고 김전일만 알았을 때엔 정말 신박해! 재미있어! 그렇게 생각했는데 이렇게 뒤늦게 밝혀진 뒷사정을 보니 참...ㅠㅠㅠㅠㅠㅠㅠㅠㅠ
    영감 수준은 아니지만, 그래도 정말 그런 한 마디라도 덧붙였었더라면 이만큼 실망하진 않았을 텐데요ㅠ
  • rainkeeper 2012/03/30 07:15 # 답글

    글쎄요, 저건 영감 수준이 아니라 사실상 표절 수준인데.;;; 원작자에게 사전 양해조차 구하지 않고 감행한. 시마다가 문제 삼지 않고 넘어가서 괜찮았지 고소를 했으면 좀 곤란해졌을 듯합니다.

    침대 트릭은 시마다 소지가 원조가 아니라 그 이전에 이미 존재했습니다.(영국계 추리소설로 기억.) 심지어 당시 일본추리소설팬이라면 한번쯤 읽어본 일본 추리퀴즈 모음집(한국에도 번역본이 나올 정도로 유명한.)에도 실려 있었던 트릭이죠. 시마다 소지 역시 그에 대한 적절한 표시 없이 그냥 베낀 거고.

    물론 둘 중 누가 더 심각한 베끼기라고 생각하냐고 묻는다면 그 부분 삭제해도 전개에 전혀 상관 없는 시마다보다 핵심 트릭으로 고스란히 차용한 긴다이치 작가겠지만. 당시 일본추리소설계에는 그런 상호표절 행위가 대규모로, 다반사로 일어나곤 했다고 합니다. 그를 통해 장르 내에서의 어떤 뒤틀린 저작권 의식(나만 그랬냐? 우리가 남이냐? 공표된 트릭은 공공재.)이 생겨났다고 해도 그리 이상하지 없죠.
  • 파김치 2012/03/30 13:12 #

    rainkeeper님, 아마추어 탐정이나 경찰들이 '추리'한 거니까 침대 트릭은 뭐 어디서 봤었다고 했어도 괜찮았을 테지만… 어쩜 이렇게 핵심 트릭을 그대로 가져다 베낀 건지...심지어 침대 트릭마저 그대로 가져다 베껴서 중요하게 써먹었으니 정말 할 말이 없습니다.
    추리물을 좋아하셔서 점성술 살인 사건을 먼저 봤던 분이시라면 나중에 소년탐정 긴다이치 하지메-_-;를 보고 얼마나 얼이 빠질 정도일지 상상이 갑니다.; 주인공도 표절인데 트릭도 표절이라니.

    공표된 트릭은 공공재라니ㅠㅠㅠ
    그러고보니 단편에서도 친구에게 트릭을 빼앗길 것처럼 되자 친구를 아예 살해한 이야기도 많았는데; 요 사정을 알고보니 그럴 만도 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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